대구는 옛 건물의 보고다.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 나라 전체가 특색 없는 현대식 건물로 채워졌지만 대구만은 예외다. 상대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덜 보면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건물들과 공간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열풍이 일면서 이들 건물도 바람 앞 촛불 신세다. 다행히 대구의 일부 옛 건물들에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역사성을 배경으로 현대의 문화적 요소와 연계되어 옛 건물들이 부활하고 있다.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재탄생이다. 장소와 공간의 중심인 '랜드마크'에서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퓨처마크'(futuremark)로 업그레이드됐다.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아양철교, 대구시민회관 등이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곳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문화'예술 흐르는 '퓨처마크'
대구선이 옮겨가면서 남은 동대구역~안심역 7.5㎞ 철로 구간. 그동안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잡풀과 간간이 보이는 쓰레기 더미로 인해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달 25일 찾은 이곳은 활기가 넘쳤다. 아양철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폐허 같았던 이곳이 조만간 황토색 포장길로 바뀌고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편의시설이 있는 공원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특히 운행이 중단된 후 흉물로 전락한 아양철교도 5년 만에 전망대를 갖춘 산책로로 탈바꿈한다. 철교 중간에는 427.75㎡ 규모의 전시장과 휴게 음식점 등이 들어선다. 올가을쯤이면 아양철교 위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금호강을 내려다보며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 철교는 2008년 열차 운행이 중단된 이후 금호강 위에 덩그러니 남아 방치돼 왔다. 역사는 깊다. 1918년 사설철도로 개통했고 1938년 7월 영천에서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연장 개통돼 대구와 포항을 잇게 됐다. 대구근대화의 상징으로 대구의 동과 서를 연결하며, 오랜 기간 대구 산업'경제'문화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그러나 4대강 정비사업의 하나인 금호강 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다. 동구청이 나섰다. '폐철교를 재활용하면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대구시를 설득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중에도 투자자를 찾기 위해 수차례 투자설명회를 열고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국내 최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이 같은 동구청의 노력은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서울대 백병진 교수가 아양철교 리모델링의 설계를 맡기로 결정했다. 설계가 해결되고서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천 점용 허가 문제로 2년 동안이나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차례의 회의 끝에 보강 대책을 마련하고 결국 지난달 최종적으로 하천 점용 허가 승인이 났다.
이재만 동구청장은 "강 위의 폐철교를 리모델링해 주민들의 편의시설을 만든 곳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주민에게 외면받았던 아양철교를 단순히 대구의 랜드마크가 아닌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퓨처마크로 만들겠다"고 했다.
◆전통에 문화를 입혀라
26일 오후 대구 동구 신서동 반야월역사. 2004년 대구선 철로가 이설하면서 문을 닫은 역사 입구에서 '칙칙폭폭' 하는 소리 대신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102㎡ 남짓한 공간에 5천여 권의 책들이 빼곡하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반야월역사의 옛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철도유물전시관도 도서관 한쪽에 마련됐다. 반야월역사에서 사용하던 여객운임표와 선로 전환기, 신호 컨트롤러, 통표 휴대기, 입환전호기, 건널목 및 교량 안내판 등이 향수를 자극했다.
1932년 문을 연 반야월역은 일제강점기부터 대구의 물류 중심지로 역할을 해왔다. 특히 1971년 안심연료단지가 지정되면서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 역사적 장소다. 일제강점기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해 건축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다. 최근까지 승객용 대합실과 역무실 등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2006년 9월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270호)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대구선 철로가 이설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역사의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동구청은 이 역을 원래 자리에서 600여m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다. 역사 외부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작은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켜 2011년 11월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재탄생 1년여 만에 동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까지 2천여 명의 주민들에게 회원증을 발급했으며 3만4천여 권의 도서가 대출됐다. 주민 반응도 폭발적이다. 주민 최유정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이곳을 하도 좋아해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다. 건물만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던 곳이 재탄생돼 책도 읽을 수 있고 옛 간이역의 향수까지 느낄 수 있어 어른들에게도 인기다"고 했다.
◆'예술 발전' 가동
요즘 중구 수창동 일대는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지난 3월 공식 문을 연 대구예술발전소가 활기차게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KT&G는 1996년 대구연초제조공장을 폐쇄한 뒤 공장 창고로 쓰던 별관 건물을 대구시에 기부했다. 시는 별관 창고를 리모델링한 뒤 실험적 예술 창작공간인 대구예술발전소를 만들었다.
대구예술발전소에는 최근까지 5만여 명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다녀갔다. 기성 예술인에 가려 마땅한 문화적 해방구가 없었던 지역 젊은 예술가에게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서울은 물론 광주, 부산 등지의 젊은 예술가도 대구예술발전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슬럼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중구 북성로 주변에 창작예술문화를 접목, 도시재생 수단으로도 떠올랐다. 대구연초제조공장은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엄청난 문화유산이다. 1909년 지어졌고 최초의 담배 제조창이다. 전쟁 때는 피란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맹정수 KT&G 대구본부 홍보팀장은 "대구는 현대미술이 태동한 도시다. 1973년 대구백화점에서 국내 최초로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이 열릴 때만 해도 서울과 부산 등에서 야단이 날 정도였다. 대구에 현대미술을 빼앗겼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구 현대미술의 전통을 이을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했다. 2017년에는 본관 부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1천300가구 규모로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이광제 KT&G 부동산사업과장은 "주상복합 아파트만 조성하려다 우여곡절 끝에 복합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앞으로 중구 및 도심 활성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대구시민회관
대구역 인근에 있는 대구시민회관도 오는 11월 시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 1975년 건립된 대구시민회관은 4년여에 걸친 리모델링을 통해 11월 개관 공연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8월 중 준공한 뒤 3개월간의 시험가동을 거친 후 정식으로 문을 연다.
재개장하는 시민회관은 지하 3층, 지상 6층, 연면적 2만6천791㎡ 규모로 1천333석의 대공연장과 248석의 소공연장, 전시실, 공연지원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꾸며진다. 특히 국제적 수준의 최고 음향시설을 갖추기 위해 대공연장은 직사각형의 슈박스 형태로 만들어진다.
또 기찻길 옆에 위치한 시민회관의 입지적 단점을 보완하고 교통소음과 항공소음 등을 차단하기 위해 철로변에 지하 10m까지 방음벽이 설치됐으며 대공연장 지붕은 이중구조로 만들었다. 녹음'녹화 및 편집 설비 역시 최첨단 장비로 갖춘다.
시민회관은 대구가 자랑하는 건축사인 고 김인호 씨의 유작으로 한국 전통건축의 부드러운 처마 곡선을 형상화한 대구의 대표적 건축물. 따라서 전면 철거 후 신축하는 대신 지붕 처마 곡선과 전면 열주 5개는 존치시켰다. 앞으로 시민회관과 지하 연결 통행로인 태평로 지하도로까지 전시공간을 확대할 계획이다. 홍성주 대구시 문화예술과장은 "사업이 완료되면 지역 최초 공연예술의 메카로 기능했던 시민회관의 명성을 되찾고 지역 대표적 콘서트 전문홀로서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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