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민철(가명'17) 군은 올해 들어 모의고사와 중간고사에서 반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항상 우등생이었을 것 같은 민철 군에게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흑역사'가 존재한다. 지금의 민철 군이 흑역사를 극복하고 지금의 우등생 자리를 차지한 데에는 가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컴퓨터 게임 중독 '청천벽력'
민철 군은 '컴퓨터 게임 중독'에 시달렸다. 민철 군이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민철 군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합의해 '정해진 시간에만 게임을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워 어느 정도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민철 군은 부모에게 폭탄선언을 하고는 게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엄마, 아빠, 저 게임에 중독돼서 못 빠져나올 것 같아요."
이때부터 민철 군과 어머니 이영순(가명'45) 씨의 전쟁이 시작됐다. 민철 군의 게임 시간은 점점 늘어나 심할 때는 오후 4시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 게임에 접속해서는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게임에 빠져들었다. 컴퓨터에 일정 시각이 되면 게임 접속을 차단시키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지만 민철 군은 그마저도 풀어버렸다. 자연스럽게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나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3, 4등을 유지하던 성적은 점점 떨어져 전교생 450명 중 290~300등까지 떨어졌다.
이를 지켜본 어머니 이 씨는 이때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창 열심히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방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씨는 새벽까지 게임을 하는 아들을 야단치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했다. 방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민철 군이 안쓰러워서 같이 밤을 새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민철 군은 게임을 그만두기는커녕 가족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고 부모에게 대들기 일쑤였다. 민철 군의 아버지 김형태(가명'48) 씨는 엇나가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았던 데다 아들에게만 매달리는 아내에게 섭섭함을 많이 느꼈다. 자연스레 부자 관계와 부부 관계도 소원해졌다.
◆고통스러웠던 '믿고 기다리기'
상태가 심각해지자 이 씨는 민철 군과 함께 대구가족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을 한 결과 센터에서는 뜻밖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민철 군이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또 아들이 게임하면서 부탁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씨는 민철 군이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민철 군에게 게임을 못 하도록 다그치지 않고 내버려두니까 점점 더 열심히 게임을 했고 '저러다 학교까지 그만둔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밤새 게임에 빠져 있는 민철 군을 지켜보던 이 씨는 민철 군이 학교에 가고 나면 걱정과 고통에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씨는 "게임을 하는 민철이 옆에서 무릎 꿇고 가만히 앉아 지켜보다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의 고통스럽고 쓴 인내가 달콤한 열매로 돌아오기 시작한 건 민철 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진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민철 군이 어느 순간부터 자정이 되기도 전에 컴퓨터 전원을 껐다. 그러다가 민철 군이 컴퓨터 게임에 흥미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고 게임을 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다시 대구가족상담센터를 찾은 이 씨와 민철 군에게 센터에서는 두 번째 처방을 내렸다. 센터에서는 이 씨에게 "민철 군을 많이 칭찬해 주라"고 했고, 민철 군에게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라"고 했다. 두 번째 처방을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씨는 게임을 내려놓기 시작한 민철 군에게 "민철이는 멋있어" "민철이는 공부도 잘해" 등 할 수 있는 모든 칭찬을 했다. 민철 군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씨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 아들 문제로 서로 다투기만 하던 김 씨와 이 씨 부부는 4년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왜 남편이 아들을 미워했고, 아내가 아들에게 마음을 쏟았는지를 이해했다. 김 씨는 최근 이 씨에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며 "같이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내려놓아야 행복해집니다"
4년 동안의 시간 동안 이 씨는 민철 군과의 전쟁 아닌 전쟁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이 씨는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자녀에 대한 불안과 고통의 감정을 내려놓아야 자식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민철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불안함을 일찍 내려놓는 방법을 몰랐던 것에 대해 민철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민철 군을 변하게 한 4년의 시간을 '진정한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정의했다.
"만약 저희 가족과 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라'는 말과 '소통 방식과 내려놓는 방법을 배워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화를 내고 집착하는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런 것들보다는 서로 이해하는 쪽으로 행동하세요. 또 내 안에 있는 집착과 미움을 들여다보고 내려놓는 것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 고통을 견뎌내고 바꿔나간다면 분명히 화목한 가족은 남의 이야기가 아닐 거예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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