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문 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의 '야전사령관'으로 통한다.
1m80㎝의 장신에 건장한 체구에서부터 '무인'(武人) 기질이 물씬 풍겨 나온다.
서 이사장의 '야전사령관' 같은 전투적 이미지는 그가 지금껏 중기협 중앙회 부회장직을 네 차례나 역임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대표 자격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가 하면 동반성장 지수를 산정하는 등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 분위기 조성의 '산파역'을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깊게 각인됐다.
'돌직구' 같은 직설 화법으로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 큰 서 이사장이 대기업에 달가운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BM금속도 대기업에 자동차와 냉장고용 주물을 납품하는 입장인 만큼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그는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숙원사항이던 '납품단가 연동제' 관철에 앞장서면서 대기업과 부딪치자 김기문 중기협 중앙회장이 "그러다가 (자칫 대기업에 미운털이 박혀) 회사에 폐가 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 어린 조언을 하자 서 이사장은 "어차피 시작한 것, 내 회사 하나 정도는 없어질 각오가 돼 있다. 솔직히 자식이라고 딸 하나밖에 없는데 딸한테는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 물려줄 것도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때 여야 대선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세웠던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전통시장 살리기와 더불어 최우선 국정과제로 채택됐지만 대기업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대기업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친기업' 정책을 공개적으로 내세우던 정부에서도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 28일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대한 납품 중단이라는 초유의 실력행사에 들어갔지만 대기업의 벽은 강했다. 결국 이 사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을 추진하는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게 했고 동반성장 관련 법안도 제정되고 납품단가 연동제도 시행되게 됐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대기업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값이 오른 만큼 납품단가를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원자재가 100~200% 상승했는데도 대기업이 10%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대기업의 횡포다. 생산해서 납품할수록 적자가 나서 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대기업이 연동제를 받아들였다.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조금씩은 숨통이 트였다."
사실 서 이사장은 박근혜정부에서도 숨은 실력자로 통한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서 이사장을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으로 발탁, 숨은 인연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중기협 중앙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만났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꺼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5월 미국 방문과 6월 중국 국빈방문 등 두 차례의 해외순방 일정에 모두 참여했다. 경제단체장을 제외하고 두 차례 순방에 모두 참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께서 여러 차례 강조한 '손톱 밑 가시 뽑기'도 서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중소기업인을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 음식점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던 중 금융권의 중소기업 대출 관행의 부적절성을 이야기하자 박 대통령이 "중소기업 정책을 하는 것보다 그런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소위 '손톱 밑 가시를 빼주는 것'이다"라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즉 "금융권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면서 신용이 나쁜 기업에는 똑같이 120%의 담보를 잡고도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기업에는 금리를 싸게 해서 회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는데 오히려 망하게 하고 있다"며 "이렇게는 못 하더라도 똑같이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박 대통령께서 '손톱 밑 가시' 같은 불합리한 금융권의 관행을 바로잡아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께서 중소기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데.
"박 대통령 스스로 대선 때 중앙회에 오셔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중소기업을 끌어올려서 중견기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대기업도 예전에는 중소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정부와 국민들이 도와줘서 대기업이 된 것 아니냐. 이제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인데 밑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관들이 수시로 우리 같은 중소기업인들을 만나서 애로사항을 듣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 아닌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되는 사다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단시일 내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부가 기틀을 만들어주면 그 기틀 위에서 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동반성장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오너들이 바뀌어야 한다.
오너들이 중소기업 현장 밑에까지 파고들어가서 현실을 보고 거기서 느낀 것을 갖고 지시를 해서 앞으로는 바꾸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바뀌고는 아무리 떠든들 대기업의 사장과 부사장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들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사업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해선 단가 후려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 오너들이 동반성장을 위해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박 대통령의 중소기업 육성 의지와 관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지적인가.
"밑에 사람들이 잘못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과 중소기업인 간의 간담회를 할 경우 조금 여유를 줘서 솔직하게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배려가 없다. 자연스럽게 애로사항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국민과 소통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민원을 해결해주고 안 해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것 같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해서는 반대했다는데 의외다.
"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공유하자며 '초과이익 공유제'를 주장하는 데는 반대했다. 이는 대기업이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을 중소기업들에 나눠주자는 것인데 우리는 그런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거꾸로 초과이익을 나눴다가 대기업이 망하면 중소기업들이 물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중소기업 영역을 지켜주고 서민이나 자영업이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중기협 중앙회 부회장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
"중소기업이 참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목소리를 내면서 몇 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대기업도 상생과 동반성장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주물조합 이사장을 맡은 지는 17년째다. 이사장은 업계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자리다.
강하게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내는 만큼 장관들도 가끔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불공정거래와 불합리한 제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에 침투하는 시장의 불합리 등 이 '3불'만 해결해주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에서 완벽하게 될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대기업도 영역을 확장해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이 하는 업종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순대까지 만들어 파니까 얼마 전 순대상인들이 '순대조합'을 결성했다. 얼마나 억울하면 조합을 만들었겠느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 이사장은 지난 5월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중소기업 유공자들을 초청, 포상을 하는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께서는 약속을 지키는 분이니까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시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며 "우리 중소기업인들이 박 대통령께서 훌륭한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시도록 반드시 도와드리겠다"고 건배제의를 했다.
경희대 체대를 졸업하고 ROTC로 육군대위로 예편한 서 이사장의 당초 목표는 공직이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것도 어쩌면 공직에 나갈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가 생각하는 공직의 꿈과 부합하는지도 모른다. 당시 그는 "공천 과정에 대해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공정한 공천을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공직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33년 동안 중소기업인으로 열심히 살았다. 어쨌든 앞으로도 중소기업의 권익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것이 제 공직이라고 믿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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