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부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육아'다. 이들은 "일터로 나간 뒤 가족 외에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과 장소를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노후를 편히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내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워킹맘, 육아 휴직을 쓰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회사, 출산 휴가를 썼다가 직장을 잃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이 시대의 현실이다.
◆ "시댁 따라 이사 다녀요"
지난달 오전 7시 대구 달서구 대곡동의 한 아파트. 은행 근무 5년 차인 임송미(28'여) 씨는 남편 정동진(35) 씨와 함께 부랴부랴 짐을 챙겨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시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16개월 된 딸 희원이가 자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일찍 깨면 엄마를 보채는 탓에 화장을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다행히 이날은 아이가 비몽사몽이다.
대충 옷을 입힌 뒤 시댁 앞에 도착하면 시어머니 김향란(65) 씨는 아파트 앞에 나와 아이를 넘겨받을 대기를 하고 있다. 아침 시간을 1분이라도 아끼라며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챙겨 건네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임 씨는 "아침마다 전쟁이나 다름없다. 시어머니가 바쁘시면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맡긴다"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임 씨가 사는 아파트는 친정과 시댁에서 각각 차로 10분 거리. 남편 정 씨와 임 씨 직장 모두 반월당역 근처이지만 이곳에 사는 이유도 육아 탓이다. 그는 지난해 육아 휴직을 내고 딸을 돌보다가 올해 2월 복직했고, 지금은 육아를 전적으로 친정과 시댁에 의존한다.
다음 달부터 아예 시어머니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려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았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잦은 회식으로 퇴근이 늦은 편이어서 임 씨까지 퇴근이 늦은 날에는 시어머니 뵐 면목이 없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맡기고 찾는 데 드는 시간과 스트레스 탓에 가족회의 끝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시댁과 친정이 없었다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여자도 못 쓰는 '육아휴직'
그래도 임 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육아휴직도 쓰고, 집 근처에 육아를 도와줄 부모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직원들조차 '육아 휴직' 말을 입 밖에 꺼내기 힘든 회사가 여전히 많다.
4년째 한 대기업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A(29'여) 씨는 몰래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A씨가 뒤늦게 새로 토익 시험을 보고, 다른 회사에 원서를 넣은 것도 결혼 뒤 불확실한 미래 탓이다.
휴일 근무가 많고 육아 휴직을 쓰기도 어려운 조직 문화 탓에 결혼 뒤 아이를 낳으면 직장 생활이 더 힘들 것 같다고 느껴져서다. 능력 있는 여자 선배들이 육아 휴직을 사용하고 승진한 경우도 극히 드물며, 때론 권고사직을 강요받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A씨는 "여자들도 회사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데 애가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조직 문화가 싫다. 은행이나 공공기관처럼 여자들의 육아를 어느 정도 배려하는 직장으로 더 늦기 전에 이직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육아 휴직도 아닌 출산 휴가를 쓴 여성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딸 2명을 키우는 전업주부 B(32) 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경리로 근무했다. 2011년 여름 큰딸을 낳으며 처음으로 출산 휴가 3개월을 썼고,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권고사직을 강요받았다.
B씨는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까지 출근했다가 회사 동의하에 출산 휴가 3개월을 썼다. 회사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내가 맡은 업무를 조금씩 나눠갔으니,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없다'고 하는데 10년 가까이 일했던 회사에서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여성이 일하면, 출산율 올라가
우리나라는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통계청의 '남성과 여성의 대학 진학률'을 보면 2009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질렀고, 올해는 여성 진학률이 74.3%로 68.6%인 남성보다 5.7%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학력 여성들의 비율에 비해 경제활동 참여율은 저조하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15~64세)를 보면 한국은 54.9%로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82.4%)와 27.5%나 격차가 벌어졌다.
또 사회적으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30대 중반에 한국 여성들은 직장을 그만둔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8년 발표한 '연간 노동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낮은 시기는 30~34세다.
대학을 갓 졸업한 때인 25~29세에는 참가율이 69.3%를 기록했지만, 임신과 출산 및 육아 때문에 30대가 되면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 경력이 '단절'되는 것. 이에 비해 노르웨이는 30~34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86.6%에 달한다.
2008년 대구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C(28) 씨가 직장을 관두는데도 결혼과 출산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09년 대기업의 유통회사에 취업했던 C씨는 1년간 다닌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는 "대형마트를 관리하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주말 근무까지 꼬박꼬박 하면서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었다. 당시 남편도 내가 일을 관두는 것이 좋겠다고 해 사표를 냈는데 지금은 '자기 일'이 있는 대학 동기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연구가 나왔다. 여성이 일하면 출산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인식과 정반대되는 연구 결과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민정 연구위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여성 경제활동 증가의 긍정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OECD 회원국 중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나라는 합계출산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여성이 많으면 국가가 각종 남녀 육아휴직, 보육시설 확충 등을 통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성의 실업은 가계 소득을 낮추고, 낮아진 가계 소득은 여성이 출산을 미루거나 기피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며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금보다 10% 높아지면, 출산율도 1.3명에서 1.5명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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