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24일 오전 5시쯤 주부 A(42) 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하던 중 영아의 목을 눌러 살해했다. A씨는 이미 2남(21세'17세)과 1녀(24세) 등 삼남매를 두고 있는 어머니여서 충격을 더했다. 사건 발생 당일 A씨는 경찰에 붙잡혔고, 한 달 뒤 영아살해 혐의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됐다. 형법엔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어 검찰의 기소는 물론 엄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A씨는 이례적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지청장 유상범)은 A씨를 조사하다 A씨의 대해 선처를 호소하는 가족의 탄원 등을 통해 정상을 참작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A씨의 기소 여부에 대해 검찰시민위원회에 의견을 구했다.
이에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찰시민위원회는 ▷홀로 출산 중이던 피의자의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인 점 ▷피의자를 법정에 세우지 않더라도 이미 피의자는 자식을 죽였다는 사실로 누구보다 고통을 받고 있는 점 ▷피의자의 선처를 구하는 남편 등 가족의 탄원 등을 고려해 만장일치로 기소 부적정 의견을 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A씨가 범행 전날 아파트 앞에서 우연히 추락사를 목격한 뒤 불안감에 시달리다 조산을 하게 됐고, 특히 혼자 출산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과 출혈 증세를 보였으며 간질 등 희귀병을 앓고 있는 셋째 아들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피해 영아 역시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알게 됐다.
A씨도 수사기관에 "예정일보다 1개월 정도 이른 출산이어서 '혹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셋째 아이처럼 이 아이도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등이 엄습했고, 갑자기 피해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가 넷째 아이를 임신한 뒤 남편에게 축하받지 못하고, 장성한 자녀들에게조차 임신 사실을 비밀로 하는 등 심리적 스트레스가 컸다는 점 등 안타까운 사연도 수사 결과 드러났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박윤해 차장검사는 "법적으로만 판단하기엔 힘든 부분이 있어 검찰시민위원회에 기소의 적정 여부 심의를 요청했고, 검찰시민위는 만장일치로 기소 부적정 의견을 의결, 시민의 판단을 존중해 기소유예 처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검찰시민위원회는=검사의 공소 제기, 불기소 처분, 구속 취소, 구속영장 재청구에 관한 의사 결정 과정에 국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해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위원회는 지역사회 각계각층 만 20세 이상의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을 갖춘 일반 시민 중에서 11명 이상 15명 이하(위원장 포함)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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