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목을 보고 빵 터졌다. 몇 해 전 꽃미남 4인방으로 히트를 쳤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이렇게 패러디하다니. 도대체 F4를 대신할 '할배'들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최근 평균 76세인 네 '할배'들의 유럽 배낭여행기가 인기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획한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는 연기 경력 50년이 넘는 네 '할배' 배우들의 좌충우돌 유럽 배낭여행기를 다루고 있다. 방송 2회 만에 '직진 순재, 떼쟁이 일섭, 구야 형'과 같이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1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언젠가 한번 같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는 네 명의 '할배'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 속 캐릭터를 벗고 그야말로 한길을 걸어온 성공자로, 앞서 살아온 인생 선배로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가 늘 꿈꾸면서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나감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행 중에 만난 사람에게서 배우는 교훈과 여행을 통해 느끼는 감동을 통해 네 할배의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방송에서 신구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구경하고 나서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다며 '죽어가면서도 이날 본 잔상이 그대로 남을 것 같다'는 진솔한 말로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00년 기준 6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였으며, 2005년 전체 인구의 9.9%로 늘어나 2026년에는 20.8%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이제 더 이상 노인들을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을 정리하고 있는 '뒷방 늙은이'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인생을 하루로 보고 우리의 나이를 현재의 시각으로 알려주면서 '아직 늦지 않았음'을 강조하던 어느 대학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100세를 기준으로 60세면 하루 중 오후 2시 40분으로 이제 겨우 정오를 넘긴 이른 오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오후 2시 40분에 '이미 오늘 하루가 다 갔으니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은 포기하고 그냥 정리나 하면서 보내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오늘 목표한 일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으며, 그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시작한다 해도 늦지 않은 그런 시간인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보내야 할 노후는 상상 이상으로 길어졌지만 그 시간들에 대한 우리의 준비와 인식 전환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필자는 서른다섯에 유럽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기억하기에 그때 이미 내 나이가 배낭여행을 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나이라고 단정 짓고는 걷는 게 힘이 든다는 둥, 나이를 먹어 감동이 줄어들었다는 둥 배낭여행이 20대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으로 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다시는 못 할 여행이라고 종지부를 찍었던 그런 여행을 지금 70대 '할배'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걸어다니면서 하나하나에 그 나름의 감동을 찾으면서 여행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날 내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그런 시대가 왔다. 현재의 60, 70대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노인'(老人)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늙어서 일선에서 물러나 그저 남은 세월 죽기를 기다리며 정리나 하면서 보내야지 생각하는 그런 '늙은이'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이제 인생 2막을 시작할 때이며, 이들 인생의 2막은 어쩌면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에 후회로 가득했던 1막을 보상해 줄 그런 아름다운 시간들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김미경/대구가톨릭대 교수·호텔경영학과 mkagnes@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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