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리스도같은 스님 부처님 닮은 목사님…종교는 삶의 태도

다양한 종교의 신앙생활을 위해 전 세계 국제공항들은 주요 종교의 신자(신도)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시설을 두고 있다. 사진은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의 기도실. 이동관 기자
다양한 종교의 신앙생활을 위해 전 세계 국제공항들은 주요 종교의 신자(신도)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시설을 두고 있다. 사진은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의 기도실. 이동관 기자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길희성 지음/휴 펴냄

종교학자이자 종교다원주의자 입장에서 종교의 본질적 역할과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출간됐다.

책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는 지은이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평생 신앙생활과 종교공부를 하면서 가져왔던 문제의식과 고민을 반영한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현대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 영성을 추구하는 방향, 특히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소통과 화합에 대해 강조한다. 그는 종교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며, 제도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정신으로서 종교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사화된 종교가 제도화되고 물상화된 종교, 배타적 경계선과 울타리를 지닌 조직체로서의 종교를 가리킨다면, 형용사 종교는 신자들 내면에 살아있는 정신으로서의 종교, 마음의 성품과 삶의 태도로서의 종교다. (중략) 가령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을 뜻하는 말로 이해한다면, 어떤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목사님보다 자비로운 성품과 청정한 모습을 지닌 스님이 더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청빈하고 겸손한 목사님이 어떤 탐욕스러운 스님보다 더 부처님을 닮은, 그래서 더 불교적인 불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은 학자의 시각으로 종교의 본질을 지적하는 책이기도 하다.

사람이 종교를 통해 구하고자 하는 바는 다양하다. 사람들마다 종교에 기대는 이유가 다양한 만큼 종교의 역할을 한 가지로 규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만약 어떤 종교가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순수하거나 편협하다면 현실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종교가 사람이 구하고자 하는 모든 욕구를 수용한다면 종교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종교는 본질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불교는 인생무상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괴로움에 대해 질문하고,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인간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종교는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굳게 닫혀 있어서 손톱도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종교는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종교를 종교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힘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런 물음을 게을리하거나 두려워한다면 종교는 타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종교의 다원화야말로 순수성 회복의 기회'라고 역설한다.

'한 종교가 사회적 지배적 종교로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영구히 갔다. (중략) 이제 어떤 종교도 지나간 시대에 누렸던 독점적 지위를 다시 누릴 수 없으며, 그런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져서도 안 된다. (중략) 현대 다종교 사회, 탈종교 시대의 종교는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순전히 메시지 자체의 힘과 영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종교는 이전보다 더 순수한 종교, 더 진정성 있는 신자들을 확보하는 종교가 된다.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종교의 홀로서기는 감추어진 축복이 될 수 있다. 종교가 과거에 누렸던 특권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 본연의 순수한 메시지에 의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가 출발하던 당시의 원초적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종교의 역설이라면, 종교는 성공이 곧 실패가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종교든 사회에서 다수 종교가 되는 순간 그 사회와 한통속이 되고 사회를 변혁할 정신적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말대로 모두가 그리스도교인인 사회에서는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지은이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비교종교학)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251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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