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 신문에 날 정도가 됩니까? 시카고나 잘 홍보해 주이소."
세계 패션가발업계를 선도하는 CEO이자, 시카고 한인사회와 현지 미국 주류사회에서 존경받는 리더. 홍세흠(67) 패션월드 Ent.,Inc 회장은 천생 경상도 사람이었다. 차림새에 격식이 없고 한번 맺은 인연을 귀히 여겼으며 고향 사랑이 애틋했다. 한인 1세 기업가로 우뚝 섰으며 현지 한인사회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에 공을 쏟고 있는 그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만났다.
◆군위 빈농의 아들
홍 회장은 1946년 8월 9일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존석굴 아랫동네인 그의 고향은 동네 이름처럼 밤이 많이 나는 마을로, 부림 홍씨(缶林洪氏) 집성촌이다. 그의 부친은 가난한 농부였지만 일찍이 서구 문명에 눈을 떴고 교육열이 높아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그의 형은 대구은행 6대 은행장을 지낸 홍희흠 씨이다.
대율리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다 경북중으로 전학하고 경북고를 나온 뒤 서강대에 진학했다. 산을 유난히 좋아한 그는 대학시절 설악산에서 낙상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척추를 심하게 다치는 큰 부상이었다. 학업을 중단한 채 그는 대구에서 2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학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영남대학교 2학년에 편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들어간 그는 1974년 이 회사의 미국 지사장으로 뉴욕땅을 밟았다. 그런데 사업을 확장하던 회사가 자금난으로 1978년 도산하고 말았다. 막막한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이 왔다. 그의 성실성을 좋게 보았던 재미교포 사업가가 자신의 고객 리스트와 영업망을 넘겨줄 테니 시카고로 오라고 권유한 것이다. 부인(김용희'64)과 당시 2명의 자녀를 거느린 가장으로서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미국 제3의 도시 시카고로 건너가 패션월드 Ent.,Inc를 차렸다.
◆세계 고급 패션가발 시장 선도
막상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나니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금력이 달리는 데다 판로가 없어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성실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 아래 밤낮없이 일에 몰두했다.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차를 몰고 돌아다녔다.
그는 '헤어 익스텐션'(Hair Extension)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헤어 익스텐션은 우리말로 치자면 장식용 붙임 가발이다. 헤어 패션 수요가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그는 최고급 천연 모발을 엄선해 자연친화적 약품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었다. 미국 상류층을 겨냥해 고급 브랜드 전략을 구사했다.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패션월드 Ent.,Inc의 제품들은 최고의 명품 패션 헤어 익스텐션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 회사의 대표 브랜드는 '보헤미'(Bohyme)인데 브랜드명이 탄생한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홍 회장이 '보헤미안'(Bohemian)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지를 제작하라고 개발실에 지시했는데 담당직원이 이를 보헤미로 잘못 알아들어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헤미는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중국에도 진출했다. 현재 패션월드 Ent.,Inc는 연매출액이 5천만달러에 이르며 세계 고급 패션가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 도모
그는 공화당 일리노이주 재정위원이기도 하다. 재정위원은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이 큰 자리인데, 유색인종으로서는 그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 정가의 실력 있는 정치인들과 친분을 통해 미주 한인사회의 권익 보호 및 주류사회 접목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친분이 깊은 정치인은 공화당 상원의원인 마크 커크(Mark Kurk)다. 홍 회장은 커크 같은 친한파 정치인 후원을 통한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꾀하고 있으며 한인 2세 정치인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표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지 한인들의 유권자 등록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기류를 조성하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그는 미주 한인 시민권자들의 북한 이산가족 상봉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미국에 사는 한인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은데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스티브 린튼(Steve Linton)이 이끄는 미국 유진벨 재단과 힘을 합해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한국의 좋은 점이 보여"
홍 회장은 산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 산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산의 매력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향의 산을 좋아하며 시간 날 때마다 산에 오른다고 했다.
"군위 삼존석굴에서 팔공산으로 올라가는 쪽의 오도암을 비롯해 치산 쪽에서 올라가는 진불암, 은해사 쪽에서 올라가는 중앙암의 경치는 기가 막힙니다. 고향에 가면 반드시 이곳을 찾습니다. 젊을 때는 눈에 안 보이더니 나이가 들수록 한국의 좋은 점이 잘 보이더군요."
홍 회장은 이제 미주 한인사회가 고국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데서 벗어나 고국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 할 시기라고 했다. 미국 내에서 한인 2'3세들의 정치적'경제적 입지가 매우 높아졌으며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해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국익 차원에서 이들을 잘 관리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악관에 진출한 한인 2'3세만 해도 수십 명입니다. 이들이 아버지 나라, 어머니 나라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고국을 잊지 않도록 교육하고 초청하는 등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조그마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글'사진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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