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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예술] 첼리스트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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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평생의 동반자죠"

첼리스트 박경숙
첼리스트 박경숙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첼로였고, 앞으로도 부단히 나를 닦아줄 평생의 동반자죠."

연습벌레인 첼리스트 박경숙(53). 그녀는 첼로에게 '민수'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늘 대화를 나눈다. 민수는 아명이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 흐트러졌다 싶으면 소리가 퍼지고, 뭔가에 심사가 뒤틀려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뒤틀리는 것이 음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민수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되짚어본다. 하루 몇 시간이고 반복하는 연습시간이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면서 가장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지게 만드는 성찰의 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계명대학교 수석졸업과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 단원이라는 타이틀을 뒤로하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악대학으로 단신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녀. 학생 신분이라 유학비 감당하기도 빠듯한 형편이다 보니 서서 공연을 봐야 하는 가장 싼 티켓밖엔 살 수 없었지만,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을 정도로 열심히 공연장을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피아니스트 알프레도 브렌델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즉흥곡'을 들으면서 급기야 그녀는 온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고 말았다. 박 씨는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온몸으로 체감했던 날이었다"며 "지금까지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표현력 있기에만 집중했던 내 연주는 마치 예술인이 아니라 기능공 같다는 느낌마저 들어 굉장히 부끄러웠다"고 했다.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히는 미샤 마이스키 역시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박 씨는 "민속 춤곡 5개를 엮은 곡 중 느린 3악장을 듣는데 가슴이 꽉 찬 듯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저렇게 평온하게 자신의 온 삶을 악기로 뿜어낸다는 느낌의 비브라토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비단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를 통해서도 영감을 얻고 그의 연주에 적용한다. 그 중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기억된 또 하나의 예술이 바로 강수진의 발레. 박 씨는 "공연장에서 강수진이 오데뜨 역을 맡은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는데 그녀의 몸짓에는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며 "그런 그의 몸놀림을 보면서 첼로 활의 움직임을 많이 연구했고, 그것이 좀 더 첼로 연주에 있어 동작을 크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대구 시립교향악단의 수석 첼리스트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10여 년 전 솔리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그곳은 내 자리가 아니었으며, 계속 머무르면 칼이 너무 무뎌진다는 느낌이 들어 나를 좀 더 채찍질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손마디가 자꾸 움츠러든다는 열정의 음악인 박경숙. "첼로를 언제 그만둬도 미련이 없을 만큼 부지런히 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소리 한 번은 내보고 첼로를 그만둬야겠다고 욕심은 있어요." 그녀는 최근 '마지막 사중주'라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앞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클래식의 궁극인 콰르텟(4중주)을 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것. 이를 위해 그녀는 오늘도 또 '민수'와 혼자만의 대화를 나누는데 매진한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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