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우리를 버렸지만, 우리는 조국을 잊지 않고 있어요, 제 가슴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요."
반은 한국인, 반은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는 머나먼 동토의 땅 사할린의 한인 동포들. 그들은 국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카레이스키'(고려인) 라는 말을 숙명처럼 떠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2만9천 명가량.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우리말을 잘하지 못한다. 나고 자란 곳이 사할린이라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광복 68주년을 맞아 사할린에서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주최로 열린 '대구의 밤'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구청년들이 마이크를 잡고 '타향살이'와 '비 내리는 고모령' 등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시작하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제노역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60대의 한인동포 2세 아들, 딸들은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돼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인동포1세들 중 70%가 대구'경북지역 출신들이다. 그들은 브이코프와 우레고르스크, 시니고르스크 등 30여 개 탄광과 벌목장, 비행장, 도로 등 토목공사장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힘든 노동에 시달렸다.
기다리던 일제의 패망 소식에 사할린 징용자들은 고국으로 귀환했어야 했지만 일본의 무책임한 방치와 소련의 비협조로 수십 년간 억류당하며 살아왔다.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면서 코르사코프 항구에는 고국으로 돌아갈 배를 타려는 4만여 명의 한인들이 몰려 들었다. 하지만 소련군의 저지로 귀국을 거부당한 채 통곡을 하던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위령탑 바닥에 시구로 이렇게 남겼다. '(중략)...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이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하릴없이 빈손 들고/ 민들레 꽃씨마냥 흩날려/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인1세들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민족차별에 의한 시련과 아픔 등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또 한인동포들은 거주지역 및 활동에 엄격한 통제와 감시에 시달렸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취직과 학교진학에도 심한 차별을 받았다. 하지만 자식에게 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한인부모들이 자녀에게 쏟은 교육 열정은 하늘도 움직이게 했다. 한편 한인동포 2세들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 덕택에 러시아 사람들보다 2, 3배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를 해서 성공을 일궈냈다.
하태균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장은 "대부분의 한인동포들은 현재 러시아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가슴 속엔 뜨거운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대구청년들이 2008년부터 6년 동안 사할린에서 펼치고 있는 '대구의 밤' 공연에는 러시아 사람들도 참석해 우리나라 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아리랑을 다 함께 부르며 동포의 정을 나누고 있다"고 자랑했다.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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