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인 주차장 '양심 장애'

표지 없이 버젓이 세우고, 장애인 동반 않고도 주차

이달 23일 오전 대구 중구 포정동 대구우체국. 외제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장애인주차구역으로 향했다. 차량을 세우고 내린 남성은 걸어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벽면에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여기는 장애인주차구역"이라고 말하자, 남성은 "차 앞에 장애인표지판이 붙어 있다"고 했다. 실제 차량에는 노란색 '장애인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관계법에 따르면 이 남성은 2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탑승한 경우에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일부 얌체 운전자들로 인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장애인표지판'을 붙이지 않은 차량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가 하면, 장애인을 동반하지 않은 채 차량을 몰고 오는 경우도 많다.

이날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역시 비장애인 차량으로 점령된 상태였다.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된 차량 29대 중 21대가 일반 차량이었다.

일반 차량의 장애인주차구역 점령은 아파트와 대형마트 같은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장소일수록 더욱 심각했다.

29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한 차량은 초록색으로 된 '주차불가' 장애인표지판이었음에도 전용주차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차량에는 장애인표지판이 없음에도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차를 세워두었다. 같은 날 대구 동구 효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도 마찬가지. 바닥에 그려진 '장애인주차구역' 표지와 알림판은 모두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하다 대구 편의시설시민촉진단(이하 편의촉진단)에 덜미가 잡힌 경우는 지난해만 무려 1만973건. 심지어 '장애인표지판'을 위조하거나 가족이나 지인의 표지판을 불법 대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 편의촉진단 신고요원이 관할 지자체에 표지판 부당사용 의심 차량 조회를 요청한 것만 모두 122차례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단속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지만 단속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 중구의 경우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모두 546곳이지만 단속원은 장애인 복지 관련 모든 업무를 맡고 있는 1명뿐이다.

보건복지부는 부족한 단속인력을 메우기 위해 장애인을 포함한 시민들을 신고요원으로 둔 편의촉진단을 꾸려 지자체에 운영을 맡겼다. 편의촉진단에 따르면 지난 2008년 60여 명에 달하던 신고요원이 활동비 부족으로 점점 줄어 올해는 10명만이 신고요원으로 위촉됐다. 이 중에서도 실제 활동하는 신고요원은 6명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신고요원으로 활동한 지체장애 2급 김민수(52'대구 북구 동천동) 씨는 최근 대구 북구의 한 관공서에 불법 주차 차량을 살피러 들어갔다가 욕설을 들어야 했다. 관리인이 김 씨의 출입을 입구에서부터 막더니 위반 차량 사진을 찍으려 하자 욕설을 퍼부은 것.

김 씨는 "불법 주차를 한 사람들이 오히려 신고요원보다 더 당당하다"며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쏟아내며 단속행위를 지적하고, 아파트는 출입 자체를 막는 경우가 많다"고 불평했다.

서경희 대구 편의시설시민촉진단 부장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단속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밑바탕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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