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행] 태항대협곡과 평요고성

사막 대신 단풍 둘러싼 중국의 '그랜드캐니언'

면산이 자리한 태항산맥은 산시성과 허난성, 허베이성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 600㎞ 동서 250㎞라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운대산-청계산-구련산-왕망령-숭산 등도 모두 이 산맥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태항산맥의 협곡은 허난성 린저우시 임려산에 이르면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태항대협곡을 이룬다.

면산을 둘러본 뒤, 자동차로 5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태항대협곡을 빠트린다면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면산과 태항대협곡은 우선 지리적 배경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면산은 드넓은 평야 앞에 우뚝 솟아 있다. 인간의 의지(해탈, 황제, 억만장자…)가 무엇이든 간에 삶의 모습이 곳곳에 배여 있다. 반면 태항대협곡은 속세와 사실상 분리되어 있다.

린저우시 중심부에서 태항대협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면 여기가 입구인가 싶지만, 아니다. 지루하리만큼 깊숙이 산맥을 헤집고 들어가야 겨우 태항대협곡의 입구를 볼 수 있다. 사람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눈에 보기에도 신선이 살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요즘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최고의 휴양지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을 갖췄다고 할까.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은 사막 한가운데 있어 좀 삭막하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태항대협곡은 웅장함은 물론이고,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푸른 녹음이,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반기며, 겨울에는 백설로 곱게 치장하는 그런 곳이다.

입구에서 전동차로 조금만 올라가면, 계곡을 따라 오르는 4㎞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나타난다. 맑은 물과 크고 작은 폭포의 비경 탓에 지루함이나 피로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절벽 계단의 아슬아슬함도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묻혀버린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복숭아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도화곡을 비롯해 곳곳의 지명이 한글로도 표기되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곡 트레킹을 끝내면, 다시 대기 중인 전동차로 정상 부근까지 올라간다. 중간 중간 600~700m 높이의 전망대가 있어 대자연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 길 낭떠러지 곳곳에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있다. 절벽 끝 부분까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다랑밭은 고단하고 절박한 마을주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마을을 이룰 생각을 했을까? 청나라 말기, 전쟁과 세금을 피해 사람들이 절벽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쟁과 가혹한 세금은 인간들을 신선의 영역으로까지 숨어들게 만들었다.

"역시, 중국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유리 전망대도 인상 깊다. 이 전망대는 위에 올라서면 유리판 아래로 깎아지른 벼랑이 그대로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오금이 저린다.

정상부근에서 수직계단을 이용해 내려가는 스릴도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수직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왕산암이 나오고, 거기에서 다시 달팽이처럼 빙빙 돌며 내려가게 만들어진 88m의 철제계단이 있다. 이 코스로 하산하게 되면 1시간~1시간 30분 소요된다. 트레킹이 부담되면 대협곡의 장관을 전동차로 즐기며 내려갈 수도 있다. 태항대협곡에 난 도로를 환경파괴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원래부터 이 도로는 절벽 위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였다.

면산에서 태항대협곡으로 떠나기에 앞서 왕가대원과 평요고성(平遙古城)을 먼저 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왕가대원은 면산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총 면적은 25만㎡로 장가대원의 5분에 1에 불과(?) 하지만, 아름다운 건축과 조각, 그 속에 담긴 정신 때문에 중국 대원(大院'대저택)을 대표한다. 서주시대 '희' 씨 성을 가진 가난한 두부장수가 "우리 가족(후손)들도 왕처럼 살아보자"고 성을 왕(王) 씨로 바꾸고, 작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대원을 이룬 것은 명나라 말기인 1644년쯤이며, 그 영화는 1911년까지 이어졌다.

왕가대원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남짓 거리에 있는 평요고성도 그 기원은 서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산시성은 동쪽으로 태항산맥, 서쪽으로 여양산맥, 북쪽으로 중국 5악 중 하나인 항산이 버티고 있고, 남쪽으로는 평원이 펼쳐진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 중심에 평요고성이 있는데, 이전에는 이민족의 침략을 막는 군사요새로 기능했지만 명나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업중심지대로 발전했다. 중국이 서구 제국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평요고성은 아시아의 맨해튼이었던 셈이다. 6,169m 성벽에 둘러싸인 290만㎡ 성내에는 지금도 3만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벽돌로 쌓은 성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토성이다. 분주하게 흙먼지를 날리며 오가는 전동차를 제외하면, 600년 전 모습 그대로인 것이 최대의 매력이다. 태항대협곡에서 마주하는 대자연과 면산과 왕가대원, 평요고성에서 느끼는 인간의 역사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글'사진: 중국 허난성'산시성에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