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컴퓨터'스마트폰 척척 86세 최곤칠 씨

컴퓨터에서 찾은 다른 세상…외로울 틈이 없어

"기자 양반! 빨리 이리 와 봐! 내가 컴퓨터로 파워포인트를 하고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는 수준이야. 기자 양반은 나만큼 할 수 있겠어?" 올해 86세의 최곤칠 씨. 자신의 이름이 붙어 있는 노인복지관 컴퓨터실로 기자의 손을 이끈다. 컴퓨터 다루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요즘은 스마트폰 기능 익히기에 도전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복지관 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받고 있다.

◆'나는 디지털 세대'

최 씨는 대구 남구 대덕노인종합복지관 컴퓨터반 회장이다. 복지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훨씬 젊은 후배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컴퓨터 도사'다. 말끔한 노타이 차림에 건장한 체격이다. 건강관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곧장 앞산 큰골을 올라 2시간 동안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신 후 산에서 내려와 샤워를 한다"고 밝힌다.

최 씨와 컴퓨터의 인연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5년 전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예나 배워볼까?' 하며 동네 서예학원을 찾아갔더니 '허리가 아픈 사람은 붓글씨를 배우기 힘들다'고 만류하더라는 것. 곧바로 평소 눈여겨봐 둔 대덕노인종합복지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컴퓨터 교실이 있어 살짝 문을 열어보니 모두 열심히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컴퓨터 1대를 배정받아 자리를 잡은 후 난생처음 컴퓨터 자판을 눌러보고 '클릭'과 '마우스'란 단어를 배웠다. 이후 컴퓨터는 최 씨를 신세대로 만들어 줬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

최 씨는 일제강점기 때 서당과 초등학교에 다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때는 초등학교에서 일본말과 일본글자만 가르쳤기 때문에 졸업을 해도 한글을 쓸 줄 몰랐다"고 한다. 어른이 돼서도 한글을 몰라 오랫동안 고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많다. "내가 못 배웠으니 내 자식만큼은 공부를 많이 시키고 싶었지." 그 결과, 큰아들 최경현 씨는 한양대학교 공과대 교수가 됐고, 작은아들 최열현 씨는 전자제품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요즘은 주변에서 '자녀들을 잘 키웠다'는 부러움을 사고 있다.

최 씨는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한 덕분에 제대 후 택시회사에 취업했다. "그 당시 택시운전기사는 정말 인기 최고의 직업이었다"고 한다. 근무도 편하고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 몇 년 후 사업과장으로 승진하고, 자동차 검사관으로 발탁됐다. 전국에 70명밖에 없는 귀한 보직이었다. 한글을 잘 몰라서 고생도 했지만, 대신 일본어에 능통해 인기가 많았다는 것.

"당시 우리나라는 차를 만들 수 없어서 모두 일본 중고차를 수입할 때였는데 공무원들이 차를 감별하는 능력이 거의 없었지. 그래서 내가 일본의 자동차 관련 잡지를 보고 공부를 해서 일본 차에 대한 지식을 쌓아 차량 전문 검사관으로 일하면서 대접을 받았던거요."

◆노인복지관으로 출'퇴근

대덕노인종합복지관은 최 씨의 삶의 터전이다. 남구 대명5동에 살다가 복지관으로 출'퇴근하기 쉽게 아예 복지관 옆으로 이사했다. "아내가 옆에 없으니 정말 외로워서 못살겠더라고. 밤에 잠이 안 와! 하지만 컴퓨터를 하고부터는 다른 세상을 발견한 셈이지."

잠이 안 오면 청소년처럼 밤늦도록 컴퓨터를 친구로 삼는다. "나이가 많아서 뚜렷한 친구도 없어, 복지관에서 10년쯤 후배 되는 이규칠 씨와 가장 절친하게 지내지. 나이 많은 나를 친형처럼 챙겨주는 등 정말 고마운 친구야"라고 말한다. 요즘은 일주일 내내 복지관에서 사는 편이다. 월'수'금요일은 컴퓨터반에서, 화'목요일은 기체조로 건강을 챙긴다. 옆 교실에서 신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져도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온종일 심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언과 명시를 퍼다가 올려서 읊조리고 멋진 그림도 붙여 넣고, 최근엔 음악을 연결하는 기술까지 배워서 정말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손자'손녀들이 "할아버지는 컴퓨터는 잘하시니까 이제는 스마트폰을 하셔야 한다"고 권했던 것. "지난 추석 때 작은아들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 왔어. 그 덕분에 이젠 젊은이들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컴퓨터처럼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독학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못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 아니냐"며 "스마트폰도 문자나 카카오톡 정도는 익혔는데도 주변에 문자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허허 웃는다.

컴퓨터를 시작한 후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처음엔 허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대덕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갔지만, 컴퓨터를 하는 재미에 어느새 지팡이도 버릴 정도로 건강을 찾았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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