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은퇴한 허모(58'대구시 북구 대현동) 씨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20년 전 개인연금을 납부하다 10년 만에 해약을 했던 일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난해부터 매달 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30만원의 가치가 이렇게 큰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며 웃었다. 한창 잘나갈 때는 30만원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만만한 돈이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해약을 했던 것인데 퇴직하고 보니 30만원의 가치는 엄청났다고 했다. 지금은 은행에 1억원을 맡겨도 매달 30만원을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월급이 없어지는 그날,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연금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작은 돈이라도 매달 들어오는 현금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연금 얼마나 도움되나
연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법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3중 노후보장체계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퇴직연금을 통해서 표준적인 생활을, 개인연금을 통해서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받는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크게 다르다. 보험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연금제도로는 은퇴 전 생활비의 45~55%(2009년) 정도를 충족할 수 있을 뿐이다. 10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하다면 50만원 정도의 연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필요한 생활자금에 국민연금이 30%, 개인연금이 7.5%, 퇴직연금이 12.5% 정도가 기여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개인연금 가입비율이 30%에 그쳐 노후생활자금 대부분을 국민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급액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자신이 원하는 노후 생활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올해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급금액은 84만4천원이다. 대구경북의 경우는 이 액수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수급자 1인당 평균지급액은 대략 30만원 정도여서 노인가계 최저생활비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은퇴생활비의 작은 부분을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애당초 연금을 은퇴준비의 전부로 기대하는 것은 옳은 셈법이 아니다. 연금은 그저 비상금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현실이 그렇다.
◆연금 믿을 만한가
미국 영국 독일 호주 국민들은 은퇴 후 연금을 통해 필요 소득 중 90%를 충당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30%에 그쳐 아직 걸음마 단계다.
불만 또한 높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국민연금에 대해 42%가 기금이 고갈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20%가량이 수령 액수가 너무 작다고 했으며 17%가 지급시기가 늦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 같은 불만은 조기연금수령자가 최근 5년 사이 두 배가 늘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11년 7월 조기연금수령자는 23만2천900명으로, 2006년의 10만1천100명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하루라도 일찍 연금을 받으려는 은퇴자들과 함께 수령할 나이를 기다릴 수 없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퇴직자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정상연금보다 적게 받는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하루라도 일찍 연금을 받아야 하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국민연금은 노후의 소득을 준비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연금이다. 실질가치를 보장하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금운용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은퇴자의 천국이라고 불려도 좋을 그리스의 경우 임금 대비 연금 수령액 비률이 95%로 OECD 30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은퇴연금이 바닥나지 않고 언제까지 은퇴자들에게 지급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결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지적들이 많다.
퇴직연금 시장도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말 현재 438만 명이 가입해 최근 가입률이 46%로 상승했지만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 비율은 13.4%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확정된 연금을 받는 DB(확정급여)형이 대세다. 선진국 퇴직연금 시장은 90% 이상이 DC(확정기여)다. DC형 중심으로 시장이 옮겨가야 자산 운용 역량을 키우고 자본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다.
◆개인연금은 연금의 완성이다
앞서 봤듯이 국민연금만으로는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개인연금이 노후대비 수단으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개인연금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부족분을 메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입자 절반이 10년 내에 중도 해지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국내 개인연금 가입자는 2012년 말 현재 850만 명으로 20~60세 인구 3천만 명 중 28.3%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1년 계약유지율은 95.5%이나 10년이 지나면 절반이 해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GDP 대비 사적연금 자산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OECD 평균 33.9%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가입률과 유지율을 높이는 일이 급선무이나 국내 은행과 보험사는 개인연금 유치에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유지율을 높이는 데도 소극적이다. 개인연금 유지율을 높이기 위해 선취수수료 비중을 줄여나가고 가입자에게는 유지기간에 따라 수수료 할인 폭을 확대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개인연금'퇴직연금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획기적인 세제혜택이 절실하다는 여론 또한 높다. 소득공제 몇 푼 받기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후보장을 위한 장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 화가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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