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인 동시에 더 큰 상처를 막는 방어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통증이 원인도 모르게 발생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해진다면 더 이상 증상이 아니라 질병이 된다. '복합부위 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대표적 질환 중 하나다.
◆평범한 일상이 갑작스레 악몽으로 바뀌어
가정주부이던 강영은(가명'46) 씨의 평범한 일상이 망가진 것은 2010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다. 왼쪽 손과 손목에 칼로 째는 듯한 통증이 서서히 찾아와 동네 의원에서 관절치료를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급기야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를 찾았고, 증상을 자세히 알려주고 여러 검사를 거친 끝에 이름조차 생소한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가만히 있어도 마치 망치로 얻어맞거나 칼로 찔리는 듯 아팠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손 색깔이 검붉게 변하고 심하게 부었으며, 관절이 뻣뻣하게 굳었으며, 갑자기 땀이 줄줄 나기도 했다.
강 씨는 치료 중에 마약류 등의 약제로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다친 적도 없는데 갑작스레 시작된 통증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고, '꾀병을 부린다. 정신이 나갔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스스로도 왜 이런 병이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심한 우울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신경을 차단하고, 마약제'항경련제'항우울제 등을 복합 처방해 7개월간 치료했지만 통증점수는 7점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척수신경 자극술'을 시행해 통증을 다소 줄였고, 힘들지만 일상생활을 해가고 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직장인 최종국(가명'51) 씨는 2008년 작업 도중 사고로 왼쪽 무릎의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그 뒤에 찾아왔다. 통증이 계속돼 다시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고, 급기야 종아리와 발로 퍼져나갔다. 다리가 붓고 색깔이 검게 변했고, 근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뻣뻣해졌다. 최 씨도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이었다.
검사상 왼쪽 무릎과 종아리의 체온이 떨어져 있었고, 혈액순환도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왼쪽 무릎뿐 아니라 발에도 커다란 쇠못이나 송곳으로 쑤시거나 얼음통에 빠진 듯한 시린 통증이 매우 심해서 자다가 깰 정도였다.
가족들은 '검사결과도 정상이고 상처도 다 나았는데 왜 자꾸 아프다고 하느냐'며 원망하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직장생활도 못하는 힘든 상황에 빠지면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최 씨도 신경차단술과 함께 마약'항우울제 등 복합약물 치료를 6개월 이상 받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척수신경 자극술'을 시행해 지금은 통증이 줄어들었다.
◆다양한 원인 있지만 정확한 발생기전 몰라
원인은 ▷외상(골절상이 가장 많음)을 입거나(70%) ▷수술과 관련해 발생하거나(20%) ▷뚜렷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경우(10%)가 있다. 이런 원인으로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병으로 진행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통증을 일으키는 동시에 혈액순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머리카락이나 손톱'발톱이 빠지는 증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손상을 받은 부위뿐만 아니라 인접 부위로 점점 통증 범위가 넓어지고, 일부 환자의 경우 손상 부위와 정반대쪽 같은 부위에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외상이나 수술 등 손상을 입은 뒤 어느 정도 상처가 회복됐는데도 1~4개월가량 진통제로도 통증 조절이 안 되며, 오히려 더 아프고 통증 부위가 주위로 퍼지고, 색깔이 변하는 등의 이상이 생기면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환자 상태를 보고 체열 검사, 뼈 검사, 자율신경 검사, 신경근 전기생리 검사 등을 통해 최종 진단을 내린다.
◆극심한 통증 탓에 자살 시도하기도
우리나라에는 약 2만 명의 환자가 보고돼 있지만 아직 이 병을 잘 모르는 탓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지, 즉 유병률에 대한 조사가 없는 상태다.
통증은 환자에 따라 얼어불은 것처럼 시리거나 불에 데인 듯한 아픔, 전기로 고문하는 듯한 아픔, 칼이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바늘로 찌르는 통증을 대략 4점이라고 비유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의 4점을 넘어서며 출산이나 칼로 베인 통증보다 훨씬 더 심해서 아픔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통증을 조절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그러나 질병의 특성상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아직 불분명하다. 여러 약물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신경차단 및 신경자극 치료 등을 병행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난치성 통증질환으로 분류돼 있다. 다만 조기에 진단해 적극 치료하면 완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환자들이 단순히 손상 후에 오는 통증으로 여겨서 소염진통제 등의 약물로 치료하려다 때를 놓쳐서 악화돼 오는 경우가 많다.
◆척수신경 자극술 통해 어느 정도 조절 가능
현재 치료법으로는 통증 전달을 막기 위해 신경을 차단하거나 항경련제'항우울제'마약제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일부 정해진 소량의 마취제를 천천히 정맥 주사하는 방법, 단기간 스테로이드제제 사용 등이 있다. 이런 신경 차단이나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이상 통증점수가 7점 이상으로 유지되는 경우에는 척수신경 자극술을 시행한다.
통증이 워낙 심해서 환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동시에 관절부위가 붓고 근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 재활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영훈 교수는 "현행 의료보험상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돼 어느 정도 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비용 부담이 큰 '척수신경 자극술'도 6개월 이상 치료 후에도 통증이 7점 이상 유지되면 보험혜택을 받지만 자동차 사고나 산업재해의 경우에는 적용기준이 달라 혜택을 받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도움말=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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