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지능형 안티

지능형 안티라는 것이 있다. 안티이면서 교묘하게 안티가 아닌 것처럼 꾸며 다른 이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익명의 인터넷 댓글에 많다. 어제 열린 삼성과 두산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 4회 초, 삼성의 공격 때 내야땅볼로 1루 주자인 이승엽이 2루로 뛰었다. 2루심은 세이프로 판정했지만, 되돌려 본 느린 비디오 상으로는 아웃에 가까워 누리꾼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부분 열성팬이지만 지능형 안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들의 수법은 단순하다. 실제로는 두산 팬이면서 삼성 팬을 자처하며 세이프라고 주장하고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막무가내로 두산 팬이나 항의한 두산 코치진을 욕하는 것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삼성 팬이면서 두산 팬이라며 아웃을 강하게 주장하고 삼성을 비난한다. 당연히 양쪽 팬의 공분을 산다.

이런 예는 익명의 인터넷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일(忌日)이었다. 많은 곳에서 공식, 비공식적인 추모식이 있었다. 여기서 나온 여러 말을 두고 정치권이 시끌벅적하다.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 시대가 더 좋았다'고 했다. 앞뒤 문맥을 보면 독재 시대가 더 낫다는 뜻은 아니지만, 충분히 오해를 살 만했다.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은 "아버지 대통령 각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4년이 됐다. 이제 아버지의 딸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셨다"고 했고,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 전 대통령께서 난 구미 땅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충심으로 존경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신분에 비춰 이 말이 부를 수도 있을 파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심지어, 이들이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교묘한 지능적 안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후광이자 정적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사정과 대통령이라는 직분 때문에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싶다면 이 뜻을 잘 살펴야 한다. 쓸데없는 구설에 올라 대통령을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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