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년 60세 시대, 고민하는 현장] 임금 수준 낮은 대구 "월급 더 깎지도 못하고…"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 고령사회로 접어든다. 1980년 62세였던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2010년 80.7세로 증가했다. 이 같은 사회적 변화에 맞춰 지난 4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는 이른바 '정년 연장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정년 60세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재계는 울상이고, 근로자는 웃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산업 현장은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있을까?

◆지역 기업들, 정년 연장에 '울상'

대구의 A자동차 부품회사는 올해 4월 임단협에서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원래 이 회사의 정년은 59세로 다른 기업보다 긴 편이지만 이번 합의에서 임금 하락 없이 정년을 1년을 더 연장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것. 또 전체 직원이 600명이 넘는 이 기업은 2016년부터 정년 연장법의 적용 대상이지만 단체 협상 내용은 201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원래보다 정년을 1년 늘렸을 뿐인데 회사 측은 고민이 많다. 매년 퇴직자가 10여 명 정도 나와 이보다 많은 수의 신입사원을 뽑았지만 벌써 신입 채용 규모를 줄일 계획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 회사 총무과 관계자는 "기업이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총액은 정해져 있다. 사무직은 매년 정기적으로 대학 졸업자를 채용하고, 생산직은 결원이 있을 때마다 뽑았지만 정년을 연장해 퇴직자 규모가 줄어들면 예전만큼 신규 채용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업계의 고민도 만만찮다. 가뜩이나 청년층 구인난에 시달리는 섬유업계는 정년 연장이 법제화되면 그나마 구직 의사가 있는 젊은 인력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직원 130여 명을 두고 있는 의류생산업체 한성FnC. 이곳에서 봉제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50세 이상이다. 특히 봉제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화 설비로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 없다.

한성FnC 김한관 대표는 "정년이 남은 50세 이상 고령자들이 일하는 동안에는 젊은 인력을 뽑고 싶어도 인건비 지출은 한계가 있으니 뽑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만약 새로 기술을 익혀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젊은 층을 채용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봉제 사업은 10년 안에 끝난다고 보면 된다"고 한숨지었다.

◆기업 부담 커지나?

지난 4월 국회 본의회에서 공공과 민간 부문의 근로자 정년을 만 60세로 늘리는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이하 정년 연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016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인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적용되며, 2017년부터는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과 국가, 지자체 등 모든 사업장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지금까지 '권고 조항'이었던 정년 연장이 의무조항으로 바뀌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정년 연장법이 시행되면 생산성이 줄어들고, 임금 부담이 늘어난다며 우려한다. 특히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연공제를 적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자들의 퇴직 시점까지 임금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의 연공성 국제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타 국가에 비해 임금의 연공성(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함께 늘어나는 것)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의 임금 수준은 근속 0~1년 초임급에 비해 약 2.2~2.4배(218~241%) 높다. 이는 관리'사무'기술직인 20년 이상 근속자들 임금이 1년 근무자에 비해 스웨덴이 1.1배(112.9%), 독일이 1.2배(126.9%) 높은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대구경영자총협회 정덕화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년 연장의 대전제는 임금피크제 도입이다. 근속 연수에 따른 호봉제를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데 임금피크제에 대한 노사 합의가 안 되면 기업이 받는 타격은 엄청나게 크다"며 "특히 서울'수도권 지역보다 근로자 임금 수준이 낮은 편인 대구는 임금을 줄이거나 동결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 기업들의 고충이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년 연장이 반드시 생산성 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일괄적인 임금피크제 적용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 일부 기업들은 법제화가 되기 전 임금 동결 없이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곳도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 및 판매업체인 한국델파이는 2005년 노사가 협의해 당초 58세였던 정년을 60세로 연장했다.

한국델파이 홍주표 노조위원장은 "당시 사측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임금피크제를 연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때 노조에서 59세인 근로자가 60세가 됐을 때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을 증명하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었고, 결국 임금 하락 없는 정년 연장에 노사가 합의했다"며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시간당 100개의 자동자 부품을 조립하다가 갑자기 80개를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령자들은 업무 숙련도가 높아져 생산성 측면에서 회사 측에도 더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청년 일자리 줄어드나?

일각에서는 정년 연장법 시행으로 고령자들의 고용은 안정되지만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 정년이 57.4세인 점을 생각하면 정년이 연장되는 약 3년간 신규채용에 심각한 지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에 후속 조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또 이 같은 문제가 청년과 중'고령자 간의 세대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영남대 경영학과 이재훈 교수는 "노조가 한발 양보해서 원래 정년이 58세까지라면 이후 2년은 임금 동결이나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식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 동참해야 한다"며 "만약 기업의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면 정년 연장이 신규 인력 채용 계획을 줄이게 되고, 앞으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정년 연장이 청년 실업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중장년층의 고용불안과 정년 연장' 보고서에서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은 전문직 및 사무직으로 보건복지, 정보통신, 예술, 스포츠 등 신산업 분야에 집중돼 있는 반면, 중'고령층은 기능과 조립, 단순노무직으로 전통적인 산업에 집중돼 있어 세대 간 고용 대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면서 "경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세대 간 고용 대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라고 분석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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