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교육의 기초 공사, 독서 -정책이 지닌 파도와 바람③

학습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인류의 지적 역사를 축장한 것이 책이니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학습=교과서=시험=성적의 등식이 성립하는 이 사회의 기현상이다. 이때 학습은 총체적 지적 발달과는 거리가 머니, 학습 때문에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눈앞의 것을 위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희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하느라 책을 안 읽는 게 당연한 현상이 되어왔다.(중략) 독서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아무리 높아져도 이 명제를 조금도 흔들지 못하고 있다.(여을환의 '책 읽는 나라 만들기' 정책포럼 중에서)

바람을 보면서 펼치는 정책은 파도에 결코 휩쓸리지 않습니다. 소위 입시제도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정책이라야 사교육과 대학을 비롯한 외부의 영향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정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사실 교육부에서 발표되는 정책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정책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책의 속살이 교육 현장에까지 스며들기가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정책이 발표되면 학원을 비롯한 사교육은 발표 다음날부터 변화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은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교육은 정책이 바뀔 때마다 느린 변화 속도로 인해 비판을 받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조직이 지닌 폐쇄성을 과감하게 탈피하여 개방된 구조로 나가거나, 그것이 쉽지 않다면 정책의 파도가 아니라 바람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율성과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책읽기'책쓰기'토론교육의 훌륭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통한 교육, 책을 통한 교육, 구체적으로는 책읽기, 책쓰기, 토론을 통한 교육은 파도의 방향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람과 함께 걸어가는 정책입니다.

왜냐고요? 말과 글은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그 생각을 가다듬어 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외화(外化)의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공부도 말과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이 말과 글의 힘을 깨닫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그 힘을 잘 쓰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말과 글을 위한 교육정책은 항상 뒷전에 머물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임에도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놓고는 다른 정책에 문제가 생기면 '말과 글'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고 탓합니다. 탓하기 전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요? '책만 읽지 말고 공부 좀 해라'는 말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던가요?

'말과 글'을 위한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강조하고 있지요. '논술과 면접'이 그것입니다. 말과 글을 위한 교육이 '논술과 면접'이라는 이름을 달면 크게 우대받습니다. 책읽기조차도 그것 때문에 한다고 하면 '공부 좀 하라'는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책은 신기하게도 사교육의 집중적인 투자의 대상이 됩니다. 말과 글을 위한 수많은 활동이 있는데 우대받는 정책이 사교육과 밀접하다는 현실적인 상황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논술과 면접'은 말과 글을 위한 교육의 꼭대기에 존재합니다. 기초공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건물의 외관만 신경을 쓰니 외부의 달콤한 유혹들에 쉽게 흔들리는 건 당연하겠지요. 가장 비극적인 진술은 바로 경쟁을 위해, 평가를 위해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 학습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독서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자유입니다. 이 부분에 바로 책읽기, 글쓰기, 책쓰기, 토론교육에 긴 시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구교육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교육의 기초공사를 위해 누구보다도 먼저 실천하고 있으니까요.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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