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명옥헌을 다시 찾았다. 두벌 꽃을 피우고 있는 배롱나무와 안방 아씨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는 정자는 물론 이곳 전체 원림을 그림자로 껴안고 있는 연못까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연못 왼쪽에 쓰러질듯 버티고 있던 어느 시인의 집필실이 연한 붉은 벽돌의 양옥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문 옆에 달린 우체통이 집필실보다 더 크게 보이던 옛집이 예전 행색을 벗어버리고 나니 보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그건 마치 가출한 시골 처녀가 명절 전날 '빼딱구두'를 신고 고향을 찾아오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문패를 보니 '자'(子)자로 끝나는 여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변 자연과 풍광에 순응하는 촌집 같은 그런 별서(別墅)라면 참으로 좋았을텐데.
광주 외곽인 북구, 남면, 고서면 일대에는 우리나라 누정문화의 집합이라 해도 좋을 누각과 정자가 정다운 이웃처럼 이마를 맞대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댓잎소리를 내는 소쇄원을 필두로 식영정, 환벽당, 송강정, 면앙정, 독수정, 취가정, 명옥헌 등 하나 같이 제멋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정자들은 선비들의 공부방 겸 쉼터이기도 하고 그들의 풍류를 밥솥의 누룽지처럼 노릇노릇 눋게 하는 맛있고 멋있는 공간이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정자들을 순위로 매길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끄는 것은 명옥헌과 소쇄원이다. 둘 다 인공의 손길이 가미된 원림이지만 소쇄원은 고즈넉함 속의 아늑함을 지녔고 명옥헌은 산자락에 숨어 있지만 연못 둑에 서서 내려다보면 시원스럽게 툭 터진 조망이 보는 이의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다.
명옥헌은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류수를 작은 연못이 받아 한 차례 숨을 돌리게 한 후 아래 200평이 실히 되는 큰 연못으로 내려 보낸다. 이 연못 주변에는 스물여덟 그루의 고목 배롱나무와 대여섯 그루의 소나무가 정자와 연못을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서 있다.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백일홍이란 별명을 가진 배롱나무 숲 속에서 난분분하게 날리는 꽃보라를 맞아본 이라면 여름 한낮 '명옥헌의 추억'을 잊지 못하리라.
내가 명옥헌을 찾은 날이 7월 백중이 며칠 지난 8월 하순이었다. 마침 땡볕에 꽃 피우기에 지친 배롱나무들은 연분홍과 진분홍을 거쳐 보라에 가까운 꽃잎들을 연못 속으로 떨궈 물 바닥에 붉은 수를 놓고 있는 참이었다. 꽃의 붉음보다 새순의 연초록이 더 아름답듯 젊고 싱싱한 푸른 잎보다 기력이 쇠잔해진 노란 은행잎이 더 아름답다. 나는 명옥헌 연못 둑에서 배롱나무 꽃잎, 즉 색(色)이 연못으로 떨어져 꽃잎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공(空)으로 돌아가는 화엄의 세계를 보았다. 이 연못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는 현장이다.
명옥헌을 다녀온 신선한 충격에 잠시 넋을 잃었나보다. 명옥헌의 개략적인 소개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한림원 기주관이란 벼슬을 한 오희도(1584~1624)란 선비가 망재(忘齋)라는 서재를 지어 칩거하던 곳이다. 인조는 쿠데타를 준비하면서 동지를 모을 즈음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의 손자 월봉 고부천을 담양의 창평으로 찾아갔다. 그는 뜻은 같이 하겠으나 지난날 광해군의 녹을 먹은 적이 있어 동참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후서마을의 숨은 인재 오희도를 찾아가라고 다리를 놓아 주었다.
인조는 그 길로 후서마을로 달려와 마을 입구 은행나무에 말을 매고 선비를 만났다. 그 나무는 훗날 '인조대왕 계마목'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지금도 정정한 키를 자랑하고 있다. 인조의 쿠데타가 성공하여 선비는 한림학사가 되었으나 1년 만에 천연두를 앓다 운명했다. 그가 죽고 30년이 지나 넷째아들 오명중(1619~55)이 진외가인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그 후 삼사백년이란 세월이 흘러 살아남은 배롱나무는 고목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는 해마다 푹푹 찌는 여름철만 되면 명옥헌의 배롱나무 꽃이 보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다. 가히 불(火)과 색(色)의 낙원인 그곳에 몸을 던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황지우 시인의 '물 빠진 연못'이란 시 한 편 읽고 이만 끝을 내자. "폭발을 마치고/ 난분분한 붉은 재들 흩뿌려지는데/ 나는 이 우주 잔치가 어지러워/ 연못가에 진로(眞露) 들고 쓰러져 버렸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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