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文字大通' 말 잘 섞지 않는 엄지족의 소통법

사랑 고백·업무 등 대부분 메신저·SNS로…때·장소 구애 받지 않고 전송

입 대신 손가락! 음성 통화 대신 문자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입 대신 손가락! 음성 통화 대신 문자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자대통(文字大通). 사랑 고백도 이별도 문자로 통보한다. 성적표도 재판 일정도 문자로 알려준다. 심지어 불이 나도, 도둑을 발견해도 문자로 신고한다. 대신 통화를 하거나 만나지는 않는다. 연인 간 은밀한 밀어도, 가족 간 안부전화도 줄어들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1998년 국내에서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15년 만에 '입' 대신 '손가락'으로 통(通)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화 통화보다 문자메시지가 좋아

대구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성수(43) 씨는 별명이 '묵언 선생'이다. 수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말을 잘 섞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주로 문자로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최근 1년 사이 학생들과 전화로 통화해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요즘 애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거나 상담할 얘기가 있어도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말을 겁니다. 처음에는 전화나 면담을 시도했지만 학생들이 꺼렸어요. 그렇게 1년 정도 문자로 대화를 하다 보니 말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어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정훈(42) 씨는 최근 거래처 직원에게 밤늦게 전화를 걸었다가 면박을 당했다. "'대체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 다음부터는 문자메시지나 SNS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화하기가 미안하기도 해서 요즘은 급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문자로 업무을 보고 있습니다."

'사귀자' '헤어지자' 같은 고백도 문자'SNS 쪽지로 하는 경우가 늘었다. 아예 이런 고백을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대신 전달해주는 '대리 고백 서비스'까지 상품으로 나왔다.

이처럼 전화 통화를 멀리하고 문자로만 소통하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요즘 10, 20대 사이에선 전화 통화를 아예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만 보낸다'는 대답(4천240명)이 '전화만 한다'는 응답(1천28명)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응답자의 절반은 10, 20대였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처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휴대전화 소지자의 31%는 전화 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선호했다. 특히 18~24세 이용자는 문자메시지를 더 편하게 여겼고, 하루 평균 109.5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영국 방송통신규제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영국인의 음성 통화 시간은 2010년에 비해 5% 감소했지만 문자메시지 횟수는 4년 전보다 4배 증가했다.

대구경북연구원 오동욱 사회문화연구팀장은 "문자메시지가 급속히 늘어난 것은 문자의 속도성, 편리성, 간결성 때문이다. 문자메시지는 빠르고 편리하게 원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주변을 의식해야 하는 음성 통화와 달리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용 가격도 문자 사용을 부추기고 있다. 원가 대비 요금이 비싸다는 지적이 있지만 음성 통화에 비해선 훨씬 싸다. 오 팀장은 "문자메시지는 사용하기 쉽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의사소통 수단인데다 타 통신수단에 비해 저렴하다. 따라서 문자메시지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통화가 무서워요

대구의 대학에 다니는 김민아(22'여) 씨의 휴대폰은 늘 진동 모드다.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를 덮어버린다. "전화벨이 울리면 온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전화를 받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항상 '진동'으로 해놓아요. 이제는 버릇이 되다 보니까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전화 대신 문자로 메시지를 남겨요." 휴대전화기의 용도는 문자 송수신용. 김 씨가 한 달 동안 통화하는 시간은 10여 분 정도. 심지어 가족들과도 문자로만 대화한다.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이정미(30'여) 씨는 전화를 받고 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얼마 전 직장을 그만뒀다. 전화가 오면 가슴이 콩콩 뛰고 심지어 속이 울렁거리면서 진땀이 났다고 한다. "직업상 전화를 걸거나 받아야 하는 일이 많은데 너무 힘들었어요. 친구나 동료는 문자메시지로 소통하거든요. 카카오톡이나 SNS 쪽지도 많이 활용하고요. 이게 익숙해지다 보니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졌지요."

이들처럼 전화가 오면 무서워서 피하게 되고 어쩌다 받게 되면 가슴이 울렁거려 대화가 힘든 증상을 앓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일명 '전화공포증'. 스마트폰 메신저 등의 문자 대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주로 앓는 신종 현대병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부터 목소리 대신 문자메시지나 SNS 등을 통한 간접 대화에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직접 대화는 불편해지는 대인불안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양태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문자나 카톡 등 SNS을 통한 간접 대화가 일상화되다 보니 음성통화는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주로 하고, 문자메시지는 평범한 일상 대화에 주로 사용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화벨이 울릴 때 심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특정공포증이 생긴다"고 했다. 또 "공포증은 간혹 전화를 받을 때 느끼는 수치감이나 증오감 혹은 축적된 경험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감정이 표출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대인불안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해지면 폭력성 등을 동반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스피치학원 등에선 기존 수업에 전화 통화 잘하는 법에 관한 수업까지 개설할 정도다. 스피치킴학원 김민지 원장은 "청소년부터 주부, 중년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전화 통화 수업에 대해 문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원만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위해 전문적인 학습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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