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9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저온법하 개심술'이 경북대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언론은 이번 심장수술의 중요성을 다루며 '새 생명 불어넣은 또 하나의 개가' '밝아오는 의료계' 등의 제목을 달아 대서특필했다. 이런 성공은 일찌감치 의료 선진국이던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첨단의료를 배워온 고병간, 이성행, 박희명 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흉부외과 창시자, 고병간
고병간은 흉부외과의 개척자이자 대학교육 행정가였다. 1899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교에 진학했다. 1919년 3'1운동 때 시위에 나섰다는 이유로 평양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1925년 졸업했으며, 외과학교실에서 2년간 수련을 마친 뒤 1927년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기독교계 병원인 제혜병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 의학부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자 연구에 몰두했고, 1937년 4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외과교수로 취임했으며, 1940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 1945년 9월 대구의학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했고, 1947년 8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암학회에 참석한 뒤 귀국하는 길에 미국에 들러 의학계를 둘러보던 중 흉부외과의 발전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48년 폐결핵환자에 대한 흉부성형술을 처음으로 시행해 한국 흉부외과의 창시자가 됐다. 1949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폐엽절제술을 성공시켰다. 이러한 활약은 흉부외과 개설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1950년대 미국 유학파, 이성행
이성행은 1919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를 거쳐 1942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대구 동산기독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뒤 1949년 대구의과대학(경북대 의과대학)에 조교로 부임했다. 1954년 11월 한미재단 장학금으로 미국 조지워싱턴대, 피츠버그대, 앨러게니종합병원에서 본격적으로 흉부외과를 전공한 뒤 1957년 8월에 귀국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심도자법(팔이나 다리의 큰 정맥을 통해 가느다란 관을 심장까지 집어넣어 심장 이상을 진단하는 것)을 시행해 1958년 대한외과학회에서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육군병원을 통해 들여온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개의 개심술(심장으로 들어오는 피흐름을 막아 심장을 비운 뒤 심장을 절개해 수술하는 것) 실험을 실시했다.
이후 동물실험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 2월 남자 환자의 심방중격결손증(좌우 심방 사이의 중격에 구멍이 생긴 질환)에 대한 개심술을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심폐기 구조상의 결함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1961년 한국 최초 저온법하 개심술 성공
196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이성행'김대수'박희명 교수 등을 중심으로 저온법하 개심술을 위한 동물실험을 시작했다. 정상 체온에서는 심장기능이 멈추면 2, 3분밖에 못 견디지만 체온을 인위적으로 29℃ 정도로 낮추면 신진대사가 느려져 적은 혈액순환(산소 공급)만으로도 6~8분가량 견딜 수 있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저온법하 개심술'이다.
이성행은 대한외과학회에 '저온법에 관한 연구'를 보고했는데,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영예의 학술상을 받았다. 이처럼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1961년 9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저온법하 개심술'을 성공시켰다.
당시는 세계적으로도 심장수술 초창기였다. 미국에서도 1953년 처음 수술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경북대에서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심장수술의 두 가지 줄기는 저체온법을 이용하는 것과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것이다. 이성행은 저체온법을 이용해 우리나라 최초의 개심술에 성공한 것이다. 환자는 선천성 심방중격결손증을 앓고 있던 8살 소년이었다. 밖에 나가 뛰어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갇혀 지내던 소년은 수술 후 새 생명을 찾았다.
◆심폐기능 연구 선구자, 박희명
박희명은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44년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6년부터 대구의과대학 내과 부의관으로 부임했다.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1957년까지 뉴욕 씨뷰(Seaview)병원, 벨뷰(Bellevue)병원, 콜럼비아대 병원 내과 등에서 우심도자술, 심전도 및 폐기능 검사 등을 연구했다. 콜롬비아대 내과 리차드(D. W. Richards), 쿠난드(A. Cournand) 교수는 1956년 우심도자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당시 최고의 의사들과 함께 연구한 것이다.
귀국 후 우심도자술을 성공시켰고, 1958년 내과 김만재'오상진, 외과 이성행, 생리학교실 김대수 등과 함께 여러 기구를 개발하고 공동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에서 어렵사리 챙겨온 기구들과 한국에서 개량해 만든 기구들이었는데, 사람에게 계속 시술하기는 힘들었다. 기계가 망가지고 당시만 해도 엄청난 고가였던 카테터(심장 이상을 진단하기 위해 혈관을 통해 집어넣는 가느다란 관) 공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실험, 특히 개를 이용한 심폐의 생리학적 검사를 꾸준히 지속해 귀중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초기 동물실험 주제는 저산소증, 과탄산혈증, 폐색전증, 일산화탄소 중독 등이 심폐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이런 동물 실험은 지금도 함부로 흉내내기 힘든 고난도 연구였다고 후학들은 기억하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감수=의료사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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