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에서 배운 것

시간을 거스르면 행복도 돌아올까?!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한계 가운데 하나가 정해진 시간의 운명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로 미리 가볼 수도 없는 한계적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인간이라면 한 번쯤 가져 본다. 과거로 돌아가 결정적인 순간의 잘못을 돌이켜 더 나은 현실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미래로 가 새로운 기술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기도 하다. 이 때문인가? SF 영화가 발달하면서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두 편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 먼저 국내 영화인 '열한시'. 우리에게는 괜찮은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왔던 감독으로 알려진 김현석의 SF 영화 시도작이다. 김현석은 'YMCA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 꾸준히 멜로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를 오갔는데, 대중적 평가도 좋았고 평단의 비평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시대 사랑의 감정을 신파적이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게 적절히 그려내면서, 그 안에 시대적 상황까지 넣으려 했다.

김현석이 시간 여행을 다룬 SF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고 약간은 걱정되기도 했다. '시월애'처럼 시간 이동이라는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을 통해 멜로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장기라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제대로 된 SF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참고할 자료도 많지 않고 CG로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를 시도한 김현석. '열한시'는 미래로 가려는 영화이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한국 연구원이 극비 실험을 하는데, 모의실험 결과 내일로 갈 수 있다. 이제 대망의 실험을 하지만, 그들이 간 내일의 연구소는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내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제목인 '열한시'는 연구소가 붕괴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미래의 시간 여행을 해도 예정된 사건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한시'가 다루는 것은 시간여행보다는 닫힌 공간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이다. 그것을 서스펜스적 요소로 다루어, 정작 무서운 것은 인간의 본능적 악마성이라고 이야기한다. SF 영화적 분위기나 장치가 그렇게 잘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김현석이 다룬 장르를 통해 인간 본성을 다루었다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시도였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은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는 것처럼,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과거로만 갈 수 있는 여행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그 시절 잘못한 것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 영화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어두운 곳에 들어가 돌아가고픈 순간을 생각하면 즉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실수를 만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시간 여행에는 원칙이 있다. 수많은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가 되니, 과거가 바뀌면 현재의 다른 질서도 변한다는 것. 물론 이미 다른 영화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다.

영화의 감독 리차드 커티스는 우리에게는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로 익숙하다. 김현석 감독과 비슷하게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왔던 감독인데, 그는 김현석과 달리 시간 여행을 다루면서도 SF 영화적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멜로적 코드와 로맨틱 코미디적 요소를 주로 하면서 단지 영화적 장치로 시간 여행을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시간 여행이 아니라 사랑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다.

'어바웃 타임'은 인생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단계와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 힘들이지 않고 살짝, 그러나 푸근하게 들려준다.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오빠로서 각각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게 된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이 인생이고, 그 변화에는 이별이 따른다는 것을 덤덤하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말한다. 그래서 전작 '러브 액츄얼리'에 비해 소소한 재미는 덜하지만 깊이는 훨씬 낫다.

우리는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그 실수 때문에 후회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실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미래로 가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와도 현실을 쉽게 고치지는 못한다.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한계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그 실수에서 무언가 배워 차츰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후손들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훌훌 떠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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