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주영이

주영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진료를 받으러 왔다. 외래 진료실 문을 열기 전 노크 소리가 남달랐다. 침착하게 세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많이 배우고 예의 바른 환자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들어오신 분은 뜻밖에도 시골 할머니였다.

여자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할머니 옷차림이 남루하고 얼굴도 많이 탄 것이 외래에서 흔히 보는 대구 주변 농촌 할머니였다.

고생을 많이 한 흔적도 역력했다. 아이 이름을 물으니 주영이라고 했다. 손가락 밑에 때가 까맣게 낀 것이 부모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예쁜 얼굴이지만 오른쪽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검은 큰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성형외과 의사인 나로서는 주영이가 병원에 온 이유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점 제거 수술 때문에 온 것이다. 주영은 할머니의 손녀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됐으나 얼굴에 있는 짙은 큰 점 때문에 놀림을 당할까 봐 점 없애는 수술을 하러 왔다고 했다.

보험증을 보니 의료보험도 아니고 의료보호 환자였다. 점 없애는 수술은 보험이 안 된다고 했더니 무척 실망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손녀의 부모 이야기를 꺼냈다. 주영이 아버지이자 할머니의 아들은 농촌 노총각이었다.

몇 년 전 신부를 찾아 베트남에 가서 주영이 어머니를 데리고 왔다. 주영이 아버지의 주벽과 폭행에 때문에 주영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엄마는 가출했다. 아빠는 술을 전보다 더 심하게 마시고 술 마시면 아이를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주영이 아빠도 돈 벌러 외항선 타러 간다면서 집을 나간 뒤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점 제거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주영이는 퇴원하였다. 약 1년 후에 주영이를 거의 잊어가고 있을 무렵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경과 관찰을 위해 왔다. 상처는 흉도 별로 없고 아주 좋았다.

국제결혼의 증가는 대세다. 결혼한 10쌍 중 한 쌍 가까이 외국인과 맺어지는 '국제결혼 10% 시대'다. 어느 농촌에는 새로 결혼하는 부부의 반이 국제결혼이라고 한다. 국제결혼의 급증은 우리 사회에 인종 차별이라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 주영이 치료는 내가 미국에서 보냈던 일 년의 유학 생활과 인종 차별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인종 차별의 편견을 없애야 한다. 주영이는 떳떳한 한국 국민이다.

박대환 대구가톨릭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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