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헬리콥터 벤

세상에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프랑스 계몽주의자 볼테르가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했다는 상식도 그렇다. 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표현은 영국 여성 전기 작가 에블린 홀의 작품 '볼테르의 친구들'에 나오는 것으로, 볼테르가 동시대 계몽주의자 엘베시우스의 저서 '정신론'에 대해 취한 태도는 바로 이것이라며 에블린이 만든 문장이다. 그 원문은 이렇다.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was his attitude now."

엘베시우스는 '정신론'에서 사람은 타고난 지적 잠재력에서 똑같다고 했다. 이는 봉건적 신분 질서를 뒤흔드는 매우 불온한 주장이었다. 파리고등법원이 정신론에 '소각 명령'을 내리는 등 '앙시앙 레짐'(구체제)이 강력하게 탄압한 이유다. 볼테르는 엘베시우스의 주장을 허접스러운 얘기라고 비판했으나 이 같은 사상에 대한 탄압은 단호히 반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벤 버냉키가 돈을 마구 찍어내 뿌린다는 뜻의 '헬리콥터 벤'이란 조롱조의 별명을 얻은 것도 오해 때문이다. 그 계기는 지난 2002년 Fed 이사로 있을 때 미국경제학자클럽(NEC)에서 행한 연설이다. 여기서 그는 "밀턴 프리드먼이 언급한 대로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쓰면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헬리콥터' 발언의 원조(元祖)는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다. 실제로 프리드먼의 저서에는 "헬리콥터가 지나가면서 소비자들 위로 돈을 뿌려준다면…"이란 비유가 자주 나온다.

다음 달 31일 물러나는 버냉키 의장에 대한 평가가 후하게 나왔다. 로이터 통신이 최근 경제학자 53명에게 성적을 매기게 한 결과 10점 만점에 8점이었다. 그의 양적 완화 조치는 금리가 제로 수준인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아내면서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없었고 미국 경제는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무모해 보였던 양적 완화가 알고 보니 보약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이런 걸출한 '경제 대통령'이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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