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매, 이제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할 때…

소중한 사람의 딴 모습, 가족에게만 '짐' 지우렵니까

기억력 감퇴, 언어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조기에 진단받아 적절한 약물 및 운동치료를 받으면 치매 진행을 상당 기간 늦출 수 있다.
기억력 감퇴, 언어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한다. 조기에 진단받아 적절한 약물 및 운동치료를 받으면 치매 진행을 상당 기간 늦출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매에 걸린 환자의 뇌 사진. 정상 뇌에 비해 상당히 위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매에 걸린 환자의 뇌 사진. 정상 뇌에 비해 상당히 위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매는 한 가지 질환의 이름이 아니다. 두통의 원인이 수없이 많듯이 치매도 다양한 원인으로 생긴 후천적 다발성 신경장애를 뜻한다. 가장 흔한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전체 치매의 70% 이상)과 뇌졸중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이다. 이들 두 가지 질환이 전체 치매 원인의 85~90%를 차지한다. 2013년 상반기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58만여 명이며, 앞으로 10년 뒤인 2014년에는 무려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는 한 사람만의 병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치매 백신 개발 가능성 높아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됐다. 뇌세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면서 기억력 감퇴, 언어 장애, 판단력 및 방향 감각 상실 등을 일으킨다.

결국에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즉 원래 성격과는 달리 의욕이 없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거나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화를 낸다. 남들이 물건을 훔쳐가고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헛것을 보거나 듣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초조해하며, 주위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원인이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잘못된 단백질이 뇌세포를 손상시켜 발생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여러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치매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고,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치매 전문가들은 30년 내에 치매 백신이 개발될 가능성이 50%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아직은 완치가 불가능하다.

◆예방과 치료 가능한 치매

혈관성 치매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병 빈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압, 당뇨병, 흡연, 고지혈증 등 위험인자 때문에 뇌혈관의 동맥경화증이 발생해 생기는 치매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뇌경색(뇌혈관이 여러 이유로 막혀서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뇌조직이 괴사하는 것)을 겪었을 때 치매 유병률이 정상 노인들에 비해 9.4배나 증가한다.

원인 질병을 치료하고 뇌졸중 재발을 예방해서 치매를 막을 수 있다. 60세 이상이라면 미리 인지검사를 통해 초기에 이런 치매를 발견하면 병의 진행을 막고 예방도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시'도가 치매 조기검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리는 것은 당연하고, 어차피 완치도 어려우니 그냥 내버려두자는 생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설마 우리 부모가 치매일 줄은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평소 틈만 나면 쓸고 닦는 어머니 성격상 지저분하게 내버려둘 분이 아니었다. "엄마, 어디 계세요?" 불 꺼진 거실에도, 부엌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안방을 들여다봐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어머니는 컴컴한 구석에서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미쳤는갑다, 내가 아무래도 미쳤는갑다…."

한 번씩 아들이 찾아올 때면 "아이구, 우리 아들 왔나" 하며 반갑게 볼을 쓰다듬던 어머니는 없었다. 가뜩이나 가냘픈 체구의 어머니는 마치 세상에서 사라지기라도 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 뿐이었다.

가까스로 진정한 어머니는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후 내내 노인정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려는데 갑자기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단다. 두 번, 세 번을 반복해도 '삐익' 하는 경고음만 울릴 뿐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단다. 20분 넘게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가 한 아주머니 덕분에 가까스로 들어왔다고 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단다. 열쇠가 아니라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것인데, 열쇠가 없어서 못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온 집안을 뒤졌단다. 그러다가 문득 아파트 입구 열쇠는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알던 친구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고, 가스불 끄는 것을 깜빡해서 냄비를 태워 먹은 것도 벌써 서너 번이란다.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집을 찾지 못해 아파트 단지를 한 시간 넘게 돌아다니기도 했단다. "그저 기억력이 떨어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이네. 결국 치매가 왔는갑다." 어머니는 엉엉 소리를 내 울기 시작했다.

◆치매 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

"저년이 다 훔쳐갔잖아. 저거 빨리 잡아가소." 최 할머니는 다짜고짜 고함부터 질렀다. 며느리에게 퍼붓는 말이었다. 간호사가 "할머니, 저 사람 누군지 아세요?"라고 물었지만 "내가 우째 아노. 그냥 도둑년인기라"하며 욕을 해댔다. 최 할머니는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 가족은 알아봤는데 이젠 그마저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옆에 있던 박 할머니는 입만 떼면 밥을 달라고 조른다. "굶겨 죽일라카나. 빨리 밥줘. 우리 아들한테 다 일러줄끼라." 점심 먹은 지 30분도 채 안 됐지만 박 할머니는 연신 밥을 찾았다. 게다가 툭하면 같은 병실 환자들과 싸움을 벌였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욕을 퍼붓고 고함을 질러댔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나 싶으면 다시 밥 달라고 떼를 썼다.

조 할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아제요. 내 좀 집에 델다 주이소. 우리 아들이 찾을낀데." 아들도 이제 이런 모습에 익숙해졌는지 그저 담담히 "예, 조금만 기다리이소. 곧 집에 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대구의 치매전문병원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는 그저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는 병이 아닙니다.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겁니다. 지금까지 알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무척 아파서 누군가 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울 수는 없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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