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고전 읽기의 즐거움

남자가 여자에게 '너는 방아확이 되고, 나는 방아공이가 되어' 방아나 찧어 보자고 말하자 여자는 왜 자기는 밤낮 아래로 가야 하냐고 항변을 한다. 이 낮 뜨거운 대사는 영원한 우리의 고전으로 불리는 '춘향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고전(古典)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전이라는 말에서 연상하는 것은 뭔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책을 읽으면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단테의 '신곡'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작품들이 그런 반열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그런 의미로 생각한다면 위에 예를 든 '춘향전'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고전소설들은 고전(古典)이라는 말에 참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많다.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의 경우는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를 만들 경우 역대 최강의 막장드라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극적이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함경도 철산 부사를 역임했던 전동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쓴 '장화홍련전'의 경우도 여러 이본들을 꼼꼼히 읽어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령이 된 장화와 홍련이 권선징악을 한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계모는 몰락한 양반 집안의 여자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장화와 홍련은 계모를 무시했다. 그리고 실제로 장화와 홍련의 살해를 명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장화를 죽인 계모의 아들 장쇠는 재판에서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으니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하는 효심이 깊은 모습을 보면 약간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예전에 고등학교 국가수준 성취도 평가에서 계모에 대한 재판 장면을 지문으로 제시하고, 계모의 변호사가 되어 계모를 변호하는 글을 써 보라는 주관식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문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계모가 마냥 악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은 고전(古典)이 아니라 단지 옛날부터 전해져 온다는 의미의 고전(古傳)으로 이름 붙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죄 지으면 벌 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을 담고 있어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오늘날에도 계속 재해석이 될 수 있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은 여러 이야기꾼들을 거치면서 더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되면서 널리 읽혀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읽으면 읽어볼수록 다시 생각되는 부분이 많고, 또 읽는 그 자체로 우리 조상들이 좋아했던 이야기나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전(古典)이 무언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고전을 현대인들과 격리시켜 온 것은 아닐까?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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