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산이라 바꿔 쓰세요"…농산물관리원 원산지 단속 강화

23일 관문시장에 원산지 표시 단속을 나선 국립농산물관리원 경북지원 원산지 표지 조사원들이 상인들에게 원산지 푯말을 나눠주고 있다.
23일 관문시장에 원산지 표시 단속을 나선 국립농산물관리원 경북지원 원산지 표지 조사원들이 상인들에게 원산지 푯말을 나눠주고 있다.

"다음에는 과태료 물립니다. 빨리 중국산으로 고쳐 쓰세요."

23일 오전 대구 남구 관문시장. 파란색 조끼를 입은 10여 명의 국립농산물관리원(농관원) 경북지원의 원산지 표지 조사원과 명예감시원들이 들이닥치자 상인들의 행동이 바빠졌다. 바닥에 내려놨던 원산지가 적힌 푯말을 올려놓는가 하면 부리나케 이들의 등장을 이웃 상인들에게 알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설 대목이면 으레 치르는 일이지만 조사원들의 발길이 상인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조사원 한 명이 과일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곶감에는 왜 원산지가 표시돼 있지 않죠? 이거 어딨거죠?"

조사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주인은 "충북 영동거라예. 푯말이 어디 있었는데." 가게 주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있었던 푯말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곶감을 올려놓은 상자에는 간체자(중국)가 쓰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중국산이네"라며 조사원이 다그치자 상인은 "어제까지 국내산을 팔았는데 바쁘다 보니 헷갈렸네"라며 변명을 늘어놨다. 조사원은 들고 있던 푯말에 '곶감-중국산'이라고 쓰고는 곶감 옆에 뒀다.

"일본 방사능 유출에다 중국산 유해 식품 영향으로 원산지 표시가 더 중요해졌는데도, 아직 정착은 멀었어요. 저러면 처벌대상이지만, 그대로 했다간 아마도 시장이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좀 더 둘러봅시다."

몇 발자국을 간 조사원이 이번에는 고춧가루 가게 앞에 섰다.

불그스름한 고춧가루 위에는 '국산'이라 적힌 푯말이 꽂혀 있었다. 조사원이 고춧가루 한 줌을 쥐더니 "아무래도 100% 국내산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하자 상인이 "국내산 비율이 높으니깐 국산이죠"라고 했다.

조사원은 "국내산과 수입산을 혼합하면 그 비율도 적어야 한다"고 설명하고서 원산지 푯말에 '국산 80-중국산 20'이라 쓰고는 상인에게 건넸다.

시장 여기저기서 조사원들이 상인들에게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들렸다.

상인들은 조사원이 지나가자 "요즘은 손님이 더 똑똑해서, 원산지가 어딘지를 물어보고 물건을 산다"며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중국산'이라고 쓰면 손님 발길이 줄어드니 어쩔 수 없다"고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기자가 둘러보니, 장을 보러온 사람 대부분이 원산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부 김정민(38) 씨는 "원산지가 쓰여 있더라도 진짜인지를 꼭 물어보게 된다. 요즘 주부들은 웬만한 농산물의 원산지 구별법도 알고 있다"며 "믿을 수 있는 단골가게를 만드는 것도 속지 않고 사는 노하우"라고 말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안전한 먹거리' 문화정착 노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전통시장에서는 원산지 눈가림이 여전하다.

대구경북에서 원산지 허위표시로 적발된 사례는 2012년 379곳에서 지난해 450곳으로 19% 증가했다. 올 들어서는 22일 만에 54곳이 적발됐다.

농관원 경북지원 김석준 계장은 "악의적으로 원산지를 속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속보다는 계도를 통해 제도 정착에 노력하고 있다"며 "양심적인 상인들이 더 많아져야 하겠지만, 소비자들도 반드시 원산지를 묻고,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면 소비자와 상인 간 신뢰가 조금씩 쌓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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