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화가 농부 김철은 씨

들녘이 캔버스요, 전시관…사회풍자 퍼포먼스도

김철은(43) 씨는 화가다. 대학에서 미술(서양화)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전시회를 연 것은 물론 공모전 입상 경력도 가지고 있다. 현재 그는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농부다. 시골에서 여러 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는 행위'설치 예술가이기도 하다.

주로 농촌 문제를 다루지만 때로는 비핵화, 독도 문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농촌이 좋아 귀촌

김 씨는 현재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에 살고 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농막을 짓고 사과를 비롯해 고구마, 야콘, 팥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혼자서다. 검게 그을린 얼굴, 긴 머리에 수염까지 길렀다. 농부 같다. 도시인의 면모도, 화가 이미지도 아니다. "3년 정도 농촌에 살았더니 농부 다 됐어요. 이렇게 사는 게 편해요. 농사지으며 그림도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퍼포먼스도 하고. 여하튼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김 씨의 고향은 경주 안강이다. 그러나 그가 귀촌해 살고 있는 곳은 영천이다. "영천 화북은 문중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할아버지'할머니 등 조상 산소가 모두 화북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여러 번 성묘하러 와본 적이 있어 낯선 곳은 아닙니다. 문중 친척들도 더러 살고요." 그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3년 전. 작품활동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늘 귀촌 설계를 하고 있었다. "사실적인 풍경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는데 실제 자연을 보고 그려보고 싶었어요. 자연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귀촌의 계기라면 계기지요."

농사일도 어렵지 않았다. 어릴 적 농사짓는 아버지를 도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 적응할 겸 1년여 동안 공덕산촌생태마을 사무장을 맡았어요. 도시인들에게 산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등 작품활동도 했어요."그만큼 농촌 들녘은 김 씨에게 캔버스였고, 때론 자연 미술 전시관이 되기도 했다.

처음 시작한 농사는 사과였다. "어릴 때 사과는 부의 상징이었잖아요. '과수원집 딸' 하면 부잣집 귀한 딸로 인식되듯 사과 농사를 직접 지어보고 싶었어요." 기술이 없어서인지 땅이 황폐해서인지 처음 수확한 사과 품질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최대한 농약을 안 치는 등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처음 수확한 사과를 지인들에게 나눠줬더니 모두 '맛있다'며 좋아했어요. 수확의 뿌듯함도 있었고요."

◆농촌 문제, 퍼포먼스'설치미술로 표현

하지만 허전했다. 자연에 의지해 농사지었던 과거와 너무 달랐다. 농사짓는 방법도, 사용하는 농기구도 달랐다. 능률과 효율만 강조할 뿐 생명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사과밭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사과가 익어가는 어느 가을날, 벗은 몸에 자연색 물감을 칠하고 개구리 자세를 하고 엎드렸다. "개구리 입장이 되어 본 거죠. 동물의 시각, 즉 개구리의 눈으로 자연을 본 겁니다. 거창하게 생명의 소중함이 어떻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그렇게 해봤습니다."

농촌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먼저 사라지고 잊혀 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것들이 천대받는 것이 안타까웠다. 설치작품전을 열었다. 과거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지게와 리어카, 괭이, 삽 등을 재구성해 작품화했다. 리어카는 뼈대만 남기고 해체해 왕겨(벼 껍질)를 붙였다. 지게 역시 분해해 왕겨를 붙였다. 위 공간에는 새를 매달았다. 물론 왕겨를 붙였다.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였을 거예요. 어르신들은 힘들고 고달팠던 과거를 회상했을 테고, 청년들은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으로, 아이들은 용도도 모르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보였겠지요. 지금은 쓸데없는 것이 돼 버렸지만 옛날에는 소중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씨의 설치 작품엔 새와 왕겨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새는 자유의 상징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꿈꿉니다. 고달픈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충동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예요. 새가 돼 훨훨 나는 것을 표현한 겁니다."

왕겨는 알맹이만 빼먹고 버린 찌꺼기다. "알맹이도 껍질이 있어야 존재하는데, 현실은 안 그렇잖아요. 사회는 힘없고, 못 배웠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소외시키죠. 껍질의 소중함, 더불어 사는 것을 표현한 겁니다."

김 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표현이었다. 독도 문제, 광우병, 원전 등을 풍자한 퍼포먼스도 했다. 농촌의 고단함을 표현하기 위해 온몸에 쇠사슬을 묶어 표현하기도 한다. 전시관에서 사과나무나 느티나무 아래서 퍼포먼스를 했다. "예술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하기엔 시간도 없고, 또 예술이 말보다 강하게 어필하는 것도 있고요.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김 씨의 이상한(?) 행위를 본 어르신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하며 혀를 찼으나 본뜻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셨어요. 쇠사슬을 감고 넘어지고 기어가는 모습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김 씨가 사회 참여 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탑골아재농장'에서 재배한 사과와 고구마, 야콘 등을 NH마켓, 옥션, G마켓 등을 통해 팔고 있다. "아직은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김 씨는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특히 딸에게 미안해요. 화가지만 정작 딸에게는 그림을 가르쳐주지 못했거든요."

김 씨는 앞으로 사회적 이슈나 겉돌고 있는 농촌 정책에 대해 지금보다 자주 표현할 계획이다. "저의 작은 몸짓이 농촌이나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물론 그림도 그릴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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