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칼럼] 빅토르 안과 한국 쇼트트랙

차기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국인 우리나라는 이번 소치에서 축제를 즐겨야 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4년 뒤 치를 겨울 스포츠 파티를 열 주최국으로서 긍정적 이미지를 내야 하는데 현장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왕국에 다름 아닙니다.

러시아 소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울합니다. 물론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는 감동입니다. 특히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당시 스냅 촬영된 이상화 선수의 헐고 갈라지고, 굽어서 상처뿐인 발은 다른 어떤 아픔도 이겨낼 수 있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소치 2014'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은 겨울왕국의 마법에 걸린 듯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신화가 됐던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스토리는 금메달을 따지는 못하고, 잦은 반칙으로 페널티만 해도 8개를 받았습니다. 세계 쇼트트랙의 전설을 일군 대한민국 팀들이 마치 비리나 저지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는 경기가 끝나고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말해서 구조적인 빙상연맹의 비리나 감독이나 코치의 구타, 선후배 간의 체벌, 한체대와 비한체대 간 파벌 싸움 등을 고칠수 있다면 고쳐야지요. 이제 더 이상 선수들을 구타하면서 가르치거나, 특혜를 줘가면서까지 특정인을 밀어주거나 어떤 선수의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특정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니까요.

알려지기로는 한국의 쇼트트랙을 반석 위에 올린 빙상연맹의 모 임원이 선수를 때리면서 훈련시켰고, 그 결과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일궈냈고, 랭킹도 없던 고교 1학년 안현수 선수를 전격 발탁해서 올림픽에 내보내기도 했다지요. 지금 그 임원을 공격하느라 빙상연맹 홈페이지는 다운되어 버렸고, 경기장 안에는 안현수 선수에 대한 응원 열기로 가득하다지요.

운동경기는 실력은 기본이고, 심리전이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상화 선수가 1,000m 대회를 앞두고 남친 주변에서 '5월 결혼설'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다 심리적인 영향 탓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더라도 올림픽이 마무리되고 나서 선수와 감독, 연맹과 가족까지 다 불러다 해결 방법을 찾고,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작업을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께서 안현수 선수의 귀화 문제를 체육계의 부조리와 연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체육계 부조리 언급에 대해서 아마도 빙상연맹은 큰 압박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내서 문제점을 커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뭔가 선수들은 다급한데 제대로 되지는 않으니 다른 선수들을 손으로 밀치다가 페널티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선수가 억울하게 넘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올림픽 성적은 돈과 명예 그리고 남자 선수들의 경우 병역 면제로 연결되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때로는 먼저 금메달을 따도록 밀어주었으니 다른 종목에서는 먼저 금메달 딴 선수에게 양보하라는 억지도 오갔던 모양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는 선수들이 영향을 받는 말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든, 남친이든, 언론이든 적절하지 않습니다. 일단 경기에 전념하게 하고, 차후 문제를 깨끗하게 도려내는 전략이 왜 없었나 아쉽습니다. 쇼트트랙 사상 첫 금메달을 러시아에 안겨준 빅토르 안의 경기 장면을 푸틴 대통령이 페이스북 팬 페이지에 올려놓는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차기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한국의 빙상 인프라가 너무 열악하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선수들이 빙상장에서 연습을 예약하기 위해 새벽에도 밤에도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제 한국의 쇼트트랙 비법을 아는 코치들이 다른 나라의 선수들을 지도하고, 그런 나라 선수들이 동계 스포츠를 맘껏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을 갖고 있고, 체력도 훨씬 좋은 객관적인 현실만으로도 대한민국 쇼트트랙은 위기입니다. 지금까지의 공과에 따라, 사태 수습을 잘해주시되 선수들에게는 맘껏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을, 지도자에게는 구태나 구악과 손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갖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요. 겨울왕국의 주제가 렛잇고처럼요. 그들 스스로 스포츠맨십으로 사랑을 되찾고, 정상을 되찾도록 우리 도와주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