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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의 "옛날 옛적에…" '서재리'명칭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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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니?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 '서재리'라는 마을이 있어.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서재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호미 서(鋤), 집 재(齋)'의 '서재'는 조선시대 이 고장의 선비였던 도여유(都汝兪'1574~1640년) 선생의 호(號)야. 그러니까 도여유 선생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은 거지.

왜 그랬을까? 서재 선생은 대구에서 활동한 유명한 학자인 한강 정구, 낙재 서사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익힌 선비야. 서재 선생이 50세 되던 1624년 그러니까 조선 인조 임금 2년에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리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결국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진다." 서재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난리를 진압하는 데 힘썼어. 그 뒤, 난리가 가라앉자 고향으로 돌아와 더욱 학문에 힘썼지.

그러던 어느 해, 서재 선생의 옆밭 주인이 선생 밭쪽으로 고랑을 더 내어 씨앗을 뿌렸어. 그래서 집안끼리 싸움이 나게 되었지.

"아니, 옆집에서 자꾸 밭둑을 갉아 들어와요." 이때, 서재 선생이 말했어. "모두 먹을 것이 귀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냥 두어라. 아무리 밭둑을 갉아 들어온들 그 얼마나 되겠느냐. 기껏해야 한두 고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감동한 옆집에서는 사과를 하고 다시는 넘어오지 않았대. 이 소문은 곧 널리 퍼져 나갔어. "참, 훌륭한 선비야!"

그 뒤, 사람들은 서재 선생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서재 마을'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와서 '서재리'가 된 것이야.

서재리에 가면 지금도 서재 선생을 모신 용호서원(龍湖書院)이 있어. 이 서원에는 또한 서재 선생의 사촌형인 도성유(都聖兪) 선생과 서재 선생의 아들인 도신수(都愼修) 공도 함께 모셔져 있어.

도성유 선생은 도여유 선생과 더불어 달성십현(達城十賢)이라고 불린 훌륭한 선비인데 그 무렵 칠곡에 살고 있으면서 자기의 땅을 향교를 짓는 데 선뜻 내놓아 크게 칭찬을 받은 바 있어.

도신수 공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 뒤 형조좌랑, 호조좌랑 등을 거쳐 함흥부사가 되었을 때에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고을 백성들을 모두 풀어주어 크게 칭찬을 들었어. 이때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이 비를 설원우(雪寃雨)라 부르며 모두 반겼대.

어때, 남에게 칭찬받을 일을 하면 이처럼 집안에도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서재 선생은 이 마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거야.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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