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마마로부터 어린이 구하고 친일 오점 남긴 지석영

1897년 '마마' 혹은 '손님'(일본식 표현:천연두'天然痘)이 창궐할 때 한의학을 공부하던 지석영(池錫永'1855~1935)은 조카딸을 비롯해 어린이들이 수난을 겪자 한의학의 무력함을 통감했다. 종두법(種痘法)이 본격 보급되지 않았던 때였다. 지석영은 종두법을 제대로 익히려고 20일 동안 걸어 부산에 가 전문가 도움으로 종두법을 배웠다. 대신 2개월간 당시 일본인 거류민들을 위한 일본인들의 한국어사전 편찬 작업을 도왔다.

충청도 청주 처갓집의 어린 처남과 마을 어린이에 대한 첫 우두 접종 성공에 이어 지속적인 접종을 위해 두묘(痘苗'천연두 예방에 쓰이는 소 몸에서 뽑아낸 면역물질) 만드는 법을 배우러 나섰다. 1880년 일본 수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우두묘 제조 기술을 익혀 돌아와 서울에 종두장을 만들어 본격 우두 접종사업을 벌였다.

개화사상가로 요동치는 정국에 유배 등 역경을 겪었지만 1885년 '우두신설'이란 최초 서양의학서를 펴냈고 1894년 갑오개혁에 동참, 개화파 정부로 하여금 '종두규칙'을 제정케 하고 전국 어린이들의 의무 우두 접종 실시로 그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을 '마마 자국'으로부터 지켜냈다.

1899년 설립된 최초 관립의학교(서울대 의과대학 모태) 교장으로 부임한 뒤 1903년 오늘 황성신문에 권종우두설(勸種牛痘說)을 발표했다. 주시경과 한글 가로쓰기에도 앞장섰지만 일본어에 능통, 일본의 동학농민 토벌군 통역과 길 안내를 맡는 등 친일 행적의 오점을 남겼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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