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이제는 정말 꽃들에게 희망을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고치란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란다. (중략)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너의 눈에는 혹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누구의 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나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란다. 오직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뿐이지!(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작년 모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아이들의 진로를 돕기 위한 독서토론을 했다. 그때 선정된 책이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현재 '줄무늬 애벌레' 아니면 '노랑 애벌레'임을 생각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왜 경쟁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도 모르고 주어진 레일 위를 걸어가는 아이들의 불행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했다.

경쟁이 정말 무서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무늬 애벌레가 경쟁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것도 수많은 꼭대기들이었다. 아래에서 보면 너무나 올라가고 싶은 곳이지만 꼭대기에 올라 만나는 건 또 다른 수많은 꼭대기일 뿐인 것이 경쟁의 본질이다.

언제까지 이런 제자리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 경쟁이라면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이겨야만 오를 수 있는 거기를 위해 경쟁하지 말고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이다. 단지 높이 오르는 꿈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꿈, 단지 날아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날아오른 다음 수많은 꽃을 피우는 매개체가 되는 꿈. 사실 나비가 존재하기에 꽃은 봄에 다시 피어날 꿈을 갖는다. 나비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이.

그런 꿈은 단지 높이 올라감을 원하지 않는다. 넓게 바라본다. 깊게 바라본다.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본다. 진실로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그런 시선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시선을 가지면 시선에 대한 마음도 지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초'중등 교육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근본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되고 학교 현장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이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창의적 체험활동의 다양한 풍경보다는 수능시험 1점이 더욱 현실적인 권위를 지닌다. 대학입학에서 여전히 수능시험의 영향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고등학교 토론 동아리 '통'에 속한 학생들은 토론 어울마당과 같은 교육청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봉사활동을 한다. 복지시설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토론활동을 하루 종일 함께 하기도 한다. 동아리 회장인 K군은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방문했는데 내가 오히려 많이 배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최소한 K군은 나누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K군은 분명 미래 인재로 자라날 것이다. 이미 애벌레가 아니라 '나비'로서의 체험을 한 셈이니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비'로 성장하는 꿈을 꾸게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을 위한 공부가 바로 인문학이다. 초'중등교육에서 인문학을 해보겠다고 하니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큰 학문'을 해야 할 대학조차 취업을 위한 공간의 역할에 그치고 있는데 오히려 입시를 위해 목을 매야 할 초'중등 교육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색해보일 것이다. 그래도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애벌레가 아닌 나비를 꿈꾸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게 하는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형형색색의 날개로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세상을 꿈꾼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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