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 댈 때 바람 방향에 맞서지 않게 해주십시오. (목이) 못 견뎌요. 오늘은 다행히 바람이 별로 없군."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가 달서구 유천네거리 주변을 살폈다. 28일 오전 7시 40분. 기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그는 "아이고 이 사람아, 여 오면서 구두 신고 오면 우짜노"라며 웃었다. 김 후보는 편한 로퍼를 신었다. 신발코가 닳아 있었다. 발이 편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날 수 있다. 김 후보는 두리번거리며 유세 장소를 골랐다. 쫓기듯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5분쯤 지났을까. "아이쿠 죄송합니다. 말하다 보니 소개가 늦었네요. 6'4 지방선거 대구시장에 출마한 기호 2번! 김부겸입니다." 시민들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뚝배기에 끓어오르던 콩나물국밥이 식기도 전에 수저를 놓았다. 이번엔 대구수목원이다. 며칠째 '게릴라식 유세'를 이어갔다. 사방을 살피던 그가 자리를 잡았다. 바람을 등져야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 더 멀리 가 닿는다. 아파트를 마주 보고 서 있어서 '벽치기 유세'라고도 했다.
"사람들이 많다고 좋은 유세장은 아니에요. 그런 델 찾아다니지 말고 지역 특성을 파악해 계획대로 돌아야 해. 바람길을 따라서 말이지."
아파트 사이로 육성이 울려 퍼져야 한다. 믿는 것은 바람뿐이다. 청중이 없어도 유세는 계속됐다. "건물에 있는 유권자가 제 목소리를 듣고 기억해주면 된다"고 눈을 찡긋했다.
'빠밤빠 빰빠'. 지나가던 트럭이 월드컵 '5박자 응원' 경적음을 냈다. 응원이다. 경적을 울린 뒤 창을 열고 자기를 봐달라는 시민도 있었다. "화이팅! 바꿔보입시더." 엄지를 치켜드는 출근족도 눈에 띈다.
"대구가 바뀌고 있습니다. 아니 많이 바뀌었어요. 야당을 지지한다는 게 부끄러웠던 그땐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는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이날 유세 테마는 '남부권 신공항'. 그 시각 새누리당 중앙당 선거대책위는 부산 가덕도에서 천막회의를 열고 있었다. 김 후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밤새 고민했다. 격앙된 어조로 김 후보는 핏대를 세워 새누리당 지도부와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판했다.
"우리 아이들이 대구에서 먹고살려면 공항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부산에서 혼자만 하겠답니다. 여러분들께서 뽑아준 국회의원은 뭘 하고 있습니까. 대구는 좀 천대해도 새누리당을 또 찍어주니까 잡힌 고기에 떡밥 안 준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대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하니까 이용해주십시오. 저 김부겸을 써먹으십시오."
목이 탄 듯 물을 들이켰다. 유세 중에도 나오는 헛기침에 물을 달라는 손짓을 많이 했다. 이동 승합차 수납함에는 목캔디와 껌, 자외선차단제가 있었다. 황사까지 더해 목이 더 따끔거린다고 했다. 사탕은 씹어먹었다. 그 시간도 아까운 듯했다. 안경을 벗자 관자놀이 옆으로 안경테 자국이 하얗다. 시골 농부와 닮아 있었다.
출근인사를 시작으로 대구수목원 입구, 도원네거리, LH대구경북본부 옆, 도원동 월배농협 네거리 5곳을 찾았다. 두 시간이 지났다. 신공항 유치가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했고, 자신의 복지'교육 공약을 설명했다.
"우리 세대가 만든 대구지만, 살아갈 사람은 젊은이들,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살만한 곳이 돼야지 않겠어요?"
11시 달서구 상인동 비둘기아파트 앞이다. 나무 그늘에서 쉬던 택시기사들과 어르신들 속으로 들어간다. 어르신 맞춤 공약을 말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어르신 전용교통카드'를 발급하겠습니다." 한 주민은 "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고예? 와 인자 나왔는교"라고 했다.
"인사만 하지 말고 여 있는 정구지나 사 가소."
"한 단에 얼만교? 아이코 잔돈이…."
3천원을 내고 쪽파와 부추 세 단을 샀다.
이동 승합차만 타고 내리기 일곱 번째. 이동 중에는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고를 체크하며 대구 밖 사정도 챙겼다. "게릴라식 유세라 쪽잠도 못 잔다"는 그는 10초도 안 돼 잠에 빠지는 모습이다. 입까지 벌리고선. 상인네거리, 달서구청 앞 유세를 끝낸 그가 진천역네거리에 다시 섰다.
"왜 2천만이 함께 써야 할 공항을 마음대로 가덕도에 둔답니까. (우리는) 호구가 아니잖아예. 우리도 아 키아야 하잖아예. 선거 급하다고 부산에 갖다 놓겠다니요. 큰돈 드는 일은 여야 합의 없이 어렵습니다. 제가 야당을 설득하겠습니다."
톤이 높아졌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 청년이 다가와 수험서에 사인을 부탁했다. '건강과 정진을! 마침내 멋진 성취를 기원합니다!' 김 후보는 청년을 안아줬다.
월배이마트, AK그랑폴리스에 이어 월배시장이다. 시장 유세 일정을 빼놓지 않는다. 상인들로부턴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수행팀이 시간이 빠듯하다며 독촉했다. 아랑곳없이 가게 구석구석 인사를 건넸다.
"알아예." 퉁명스럽게 뒤돌아서는 반찬집 아주머니를 붙잡는다."알아도 손 한 번 잡아주이소." 넉살 좋은 웃음을 건넸다.
500㎖ 생수 5병을 마셨지만 화장실 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벼락치기하는 수험생 같아요'라는 기자의 말에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안 그럴 수 있겠냐"며 웃었다.
오전에만 달서구 내 11곳을 돌았다. 유세 일정이 너무 빡빡하지 않냐고 물었다. "오늘 저녁 있을 토론회 준비만 아니었어도 스무 곳은 족히 넘었을 껄?" 수행팀 관계자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50곳 가까이 게릴라 유세를 한다"고 말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선 월배시장 막다른 골목 한 식당을 찾았다. 늦은 점심이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올리지도 않고 국밥 한 그릇을 비웠다. 배를 채웠음에도 바지 뒤춤이 헐렁하다. "5키로가 빠졌어요"라고 입을 다셨다.
선거사무소에 돌아온 건 오후 2시였다. 둘째 딸 윤세인 씨와 토크 콘서트를 해야 한다. 윤 씨는 탤런트다. 딸을 보자 표정이 풀린다. 김 후보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딸의 대답에 놀라기도 했고, "용돈이 짜다"는 말에는 웃었다. 그는 평범한 아빠였다.
이제부턴 토론회 준비다. 토크 콘서트 직후 김 후보는 급히 자리를 떴다. 비공개회의와 토론회 준비를 마친 그를 대구시청 앞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대구가 없었다면 지역주의에 맞서 덤벼보자 못했을 것입니다. 지역주의 깨보자, 총대 메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시민들로부터 어떤 든든함을 느낍니다. 제게 대구는 큰 '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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