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 조간신문 1면에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가 각각 지역 후보들과 함께 비에 젖은 바닥에 엎드려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이에 앞서 3일 자 한 조간신문 1면에도 서울의 한 전통시장을 찾아 맨손으로 갈치를 들어 올리고 있는 정 후보와 어린이집에서 점심 배식을 한 뒤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 후보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출현하는 '친서민' 퍼포먼스다. 생선을 맨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는 정 후보의 모습은 더 없이 서민스럽다. 그가 서울시장 후보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영락없는 생선장수 아저씨로 착각할 만하다. 양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어린이들과 대화하는 박 후보의 표정은 더 없이 온화하고 다정하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의 '포스'가 절절히 풍긴다. 정 후보와 박 후보만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표정도 이와 똑같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재산이 2조 3천억 원이 넘는 7선 의원과 7억 원 가까이 빚을 지고는 있다지만 결코 서민이라고 할 수는 없는 현직 서울시장의 서민 행보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든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선자들은 맨손으로 생선을 만지거나 앞치마를 걸치고 어린이들에게 배식할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한 서민 행보가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가. 당선, 그리고 큰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서민스러움'의 연출은 아닐까.
"영국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프랑스 계몽주의자 장 자크 루소 말이다. 18세기 영국 민주주의는 선거 기간에만 일시 중단되는 노예제라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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