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교수들이 본 월드컵] 축구를 잘하려면… 다양한 운동 접해야

건강해지려면 편식하지 말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쌀밥이 좋다고 쌀밥에 김치만을 계속 먹지 말고 채소와 고기, 중식과 양식 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 이외에 배구, 농구, 핸드볼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축구는 전문용어로 '개방기술' 즉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운동이다. 축구와 같은 개방기술의 특징은 시합 중에 끊임없이 임기응변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 상황에 대처하는데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축구 경험이 아닌 다른 운동의 경험이다. 연구에 의하면 스포츠 선진국 선수들은 청소년기에 네 가지에서 다섯 가지 정도의 운동을 하고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도 두 가지에서 세 가지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운동을 다양하게 경험하면 전이 현상 즉 손기술이 발기술로, 반대로 발기술이 손기술로 자연스럽게 이동 전달이 된다. 발을 사용하는 축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손을 사용하는 배구나 농구의 경험이 임기응변의 힘이 된다. 외국의 유명한 유소년 축구 클럽이 어린 선수에게 축구 이외의 것을 많이 가르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축구선수가 일어나서, 밥 먹으면서, 훈련장으로 이동하면서, 연습하면서, 잠자기 전까지 온종일 축구를 생각하면 뇌에 축구에 대한 정보는 많이 저장되지만, 실제 시합에서 처리되는 정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문구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숫자 맞추기 퍼즐을 보면 마지막에 꼭 한 칸이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숫자 맞추기를 할 때 모든 칸이 숫자로 가득 차 있으면 숫자를 움직일 수 없어서 맞추기를 할 수 없다. 한 칸 비어 있을 때보다 두 칸 비어 있을 때 숫자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처럼 뇌를 축구정보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적어도 두 칸 정도는 농구, 배구 등 다른 운동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고등학교 시절 후보 농구선수이면서 야구와 골프에 손을 놓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로 편식하지 말고 다른 운동을 다양하게 경험할 필요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잔디구장이 아닌 마사토가 깔린 학교운동장에서 경기하면 된다. 메시나 호날두가 우리나라 학교운동장에 깔려 있는 마사토 위에서 축구를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아마도 두 선수는 시쳇말로 얼음이 될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적으로 운동기술(축구)을 처음 배우거나 습득할 때 '운동에 대한 관념 획득'이 생긴다. 운동학습 초기에 생성되는 관념 획득은 성장 후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마사토나 인조잔디, 천연잔디에서 연습한 선수는 그 상황에 각각 맞는 관념 획득을 하게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의 맥락과 같다. 메시나 호날두가 마사토 위에서 축구를 하면 얼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두 선수가 천연잔디 위에서 축구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연습상황이 실제 상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축구의 성공과 실패가 전적으로 관념 획득 때문은 아니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축구에 문외한이라도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뭐냐고 물으면 골 결정력 및 문전처리 미숙이라고 말할 것이다. 학자적 입장에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라면 필자는 잘못된 관념 획득이라고 당당히 말하겠다.

더불어 월드컵 16강'8강 진출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다. 바람직한 투자는 꿈나무 선수 육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투자에는 훌륭한 지도자의 경험적 투자, 정부나 지자체의 물질적 투자, 연구에 기반을 둔 학문적 투자 등이 있을 것이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꿈나무 선수를 육성하면 15~20년 뒤에는 월드컵 지역예선과 본선 16강 진출까지는 가슴 졸이며 경기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구 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