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카푸어'(Car Poor)라는 신조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카푸어란 자신의 소득에 비해 비싼 '과시용' 수입차를 무리하게 구입한 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최근 20, 30대들이 카푸어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카푸어는 자동차를 이동수단을 넘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동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기 유모차에서부터 외제차에 이르기까지 값 비싼 탈것에 집착하는 현상을 짚어봤다.
◆부유한 경제력의 상징, 외제차
지금까지 개발된 탈것들 중 이동수단보다는 재산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게 평가받는, 어찌 보면 존재 목적이 전도된 대표적인 이동수단이 자동차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 외제차는 부유함의 상징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되었다.
새로 차를 구매하려는 이주형(31) 씨는 외제차와 국산차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이 씨는 "실용성만 따진다면 국산차를 선택하는 게 맞다. 하지만 몇몇 외제차는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가격대인 데다,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시 쳐다보는 브랜드라 선택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김유신(33) 씨는 아예 외제차를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다. 김 씨는 "'운전하는 맛'과 타고 다닐 때 느껴지는 주변 운전자들의 시선을 즐기기 위해서는 조금 무리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며 "할부나 리스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구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범어네거리~두산오거리에 있는 외제차 전시판매장은 약 10곳에 이른다.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는 한 외제차 브랜드의 가장 싼 차의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2천990만원이다. 이 차의 배기량만 놓고 따졌을 때 비슷한 배기량의 국산차는 2천만원 초반 대 가격이면 최고급 사양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이 외제차 브랜드의 딜러는 "30대 초중반의 고객들이 상담을 많이 받고 차량을 받기까지는 한 달 이상 걸린다"며 "대구의 젊은이들이 이 차를 살 만큼의 구매력이 없을 것 같아도 실제 사려는 사람들은 다 산다"고 말했다.
대구차량등록사업소에 따르면 대구에 등록된 자가용 외제승용차는 지난 5월까지 총 5만9천208대로 전체 자가용 승용차의 5.8%를 차지한다. 지난해 5.3%보다 높아진 수치다. 또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등록된 외제승용차는 총 4천17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천838대보다 8.6% 늘어난 수치다.
◆아이들에게도 수입브랜드 고집하는 부모들
요즘 공원에 나가면 '외제차'를 탄 유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외제차 브랜드를 붙인 장난감 전동차들이 공원을 달리고 있다. 실제 수입차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는 아니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외제차 브랜드가 찍히지 않은 전동차의 경우 10만원 대지만 여기에 수입차 로고가 붙으면 가격은 4배에서 5배로 뛴다.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문의와 구매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의 한 전동차 매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전동차는 49만원짜리 아우디 R8다. 사장은 "요즘은 미리 다 알아보고 오기 때문에 가격에 놀라는 편은 아니지만 처음 오시는 분들은 비싼 가격에 다들 놀란다"며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기도 하고 내 아이도 외제차를 태우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은 외제차 전동차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70만원 짜리 전동차는 출시되기 일주일 전인데도 벌써부터 예약자가 40명을 넘었다.
고가의 명품 유모차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국내 가격이 비싸다'거나 '국내산 유모차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등 연이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입 유모차는 많은 부모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수입 유모차의 가격은 국산의 3배가 넘는다. '고소영 유모차'로 화제가 된 미국 브랜드 오르빗(Orbit)은 100만~150만원에 팔리고 있다. 유모차계 벤츠라 불리는 스토케(노르웨이) 가격도 120만~200만원 대다. 국산에 비해 가격이 3배 이상이지만 수입 유모차는 없어서 못 판다. 대구시 달서구의 한 유아용품점 관계자에 따르면 국산 유모차는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지만 수입 유모차는 주문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입 유모차를 선호하는 데에는 과시 심리가 작용한다는 의견이 있다. 국산 유모차와 수입 유모차를 모두 사용해 본 김현주(27) 씨는 수입 유모차를 몰고 나갔을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고 한다. 수입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얼마쯤 하냐", "어디서 샀냐"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고 한다. 김 씨는 "둘 다 써본 입장에서 성능에 큰 차이는 없지만 주위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게 수입 유모차를 사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00만원 짜리 유모차를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수입 유모차를 고집하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자신의 소득을 밝히면서 수입 유모차를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가의 탈것에 매달리는 이유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 행태를 '나와 제품을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진철 교수(경북대 사회학과)는 "탈것에 대한 사치는 도시의 익명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익명성을 띠게 됐고 상대방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로 외형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비싼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제품이 나를 나타낸다고 여기는 것이다. 노 교수는 "탈것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차, 비싼 유모차를 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에게 보여지는 속성이 높은 물건일수록 비싼 브랜드를 소비해 나를 차별시킬 수 있다는 소비자의 심리도 작용한다. 김지호 교수(경북대 심리학과)는 "탈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속성이 높은 제품"이라며 "남들이 볼 수 있게 좋은 차를 탐으로써 남과 차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의 심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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