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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듣는 클래식]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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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누군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순간 많은 곡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기에 어물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가장' 이라는 말이 붙으면 모든 게 어려워진다. 다른 어떤 곡보다도 강하게 내 마음을 잡아끄는 한 곡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장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 뛰며 들었던 곡이 있었다고. 이 곡이 끝나면 마치 연주회장에서 환호하듯 혼자 오래도록 박수를 치곤 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베토벤이 1808년부터 다음해까지 걸쳐 쓴 곡으로,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다. 수많은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곡으로 가히 '피아노 협주곡의 황제'라 불릴 만하다. 곡 제목인 '황제'는 베토벤이 붙인 이름이 아니며,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대등하게 맞서는 피아노의 표현에서 황제의 당당함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듯하니 꽤 잘 붙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미켈란젤리(1920~1995)/빈 심포니 줄리니(1914~2005)의 음반으로 들어본다. 1악장은 관현악의 강한 화음 뒤에 화려한 피아노 카덴차가 물밀듯 밀려온다. 오케스트라가 긴 서주를 펼치며 시작하는 보통의 협주곡과는 다른 형식이다. 이 피아노 카덴차 덕분에 피아노가 곡의 주도권을 잡은 듯한 느낌이다. 1악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에 베토벤이 써놓은 문구이다. '카덴차는 필요 없고 그대로 진행.' 당시 곡의 마지막은 피아노 연주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기교를 펼치는 카덴차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베토벤은 자신이 악보에 피아노 연주를 적어 넣고 카덴차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만의 고집과 카리스마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어지는 2악장은 아름답고 느린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아끼는 악장이다. 개인적으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폭발적인 3악장을 위해 기분 좋게 견디는 순간이기도 하다. 2악장과 3악장은 하나로 쉬지 않고 연결되는 것이 특징인데 3악장 첫 음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 듣는다. 2악장에서 암시되고 있던 주제가 갑자기 독주 피아노에서 폭발적이고 맹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뛰어나오는 3악장을 들으면 매번 가슴이 벅차오른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감동적이다. 느린 연주에서든 현란한 속주에서든 그의 독주는 치밀하고 유창하다. 음이 끊어지는 느낌이 없이 유려한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르는 감정으로 가슴이 부풀어 온다. 하지만 이 연주에서 진정 감동적인 부분은 미켈란젤리(독주자)와 줄리니(지휘자) 사이의 긴밀한 일체감이다. 서로의 음악 세계에 깊이 공감한 듯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때로는 느긋한 템포 속에 적절한 힘과 세련미로 노련하게 서로의 화음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파트너십이 느껴진다. 열정적인 흐름과 다채로운 표현들을 바탕으로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는 '황제' 협주곡. 이들의 연주 덕분에 이 곡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기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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