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어떤 시위- 공광규(1960~ )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나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 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위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그 갈등이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 때 약자는 강자를 향해 시위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뱀 보듯 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조합에서 시위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언제나 언론에서는 그 앞에 불법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그러니까 시위는 나쁘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이 늘 종이만 주니까 팩스도 화가 나서 나도 푸른 나뭇잎을 먹고 싶다고 주인을 향해 입을 닫고 침묵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팩스도 시위를 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가?

권서각 시인 kweon51@chol.com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조국 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비상계엄 사과를 촉구하며, 전날의 탄핵안 통과를 기념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극우 본당을 떠나...
정부가 내년부터 공공기관 2차 이전 작업을 본격 착수하여 2027년부터 임시청사 등을 활용한 선도기관 이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2차...
대장동 항소포기 결정에 반발한 정유미 검사장이 인사 강등에 대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경남의 한 시의원이 민주화운동단체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