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뭄·바이러스 극성…올 고추 반타작"…영양·안동 고추밭

노지 고추 태반이 바이러스 감염 "40년 만에 이런 가뭄 처음"

경북 북부권 가뭄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 고추 최대 산지인 영양. 이곳에서는 가뭄 탓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추가 많다. 가지가 갈라지거나 잎이 오그라들고, 시들어 정상적인 고추에 비해 크기와 수확량 등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엄재진 기자
경북 북부권 가뭄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 고추 최대 산지인 영양. 이곳에서는 가뭄 탓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추가 많다. 가지가 갈라지거나 잎이 오그라들고, 시들어 정상적인 고추에 비해 크기와 수확량 등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엄재진 기자

낮 최고기온이 37.4℃까지 치솟은 지난달 30일, 안동과 영양 등 북부지역 고추밭들은 생기를 잃고 있었다. 오랜 가뭄과 고온 영향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추들이 늘면서 시름시름 말라 들거나 볼품없는 고추만 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예년 같으면 홍고추 수확이 시작되고 본격 출하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들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추밭의 농민들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다본 체 원망스런 한숨을 짓고 있다.

고추 생산농 김영한(69'영양 입암면 산해리) 씨는 "고추농사 40년 만에 올해처럼 가물기는 처음이다. 해마다 태풍이 몰아친 이후에 탄저병 등 고추 역병으로 걱정해보긴 했어도 가뭄에 따른 바이러스로 고추가 말라 비틀어지는 광경은 보질 못했다"며 "산비탈 밭이라 스프링클러 시설도 어려워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영양지역 최대 작물인 고추는 올해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5월 고추 모종을 밭에다 옮겨 심는 정식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비가 내리지 않았던 영양 경우, 비닐 터널 없이 노지에 심은 고추들이 바이러스병에 들어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노지 고추들이 즐비한 영양 입암면과 석보면, 청기면 등지에는 정상적인 고추에 비해 키가 절반밖에 자라지 않은 고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고추들은 대부분 가지가 부러지거나 갈라지는 바이러스 피해를 앓고 있다. 게다가 수확을 앞둔 홍고추들도 정상 고추 과실 크기의 절반 크기에도 불구하고 쪼글쪼글 말라 들어가고 있다.

영양 청기면 저리 김주칠 이장은 "가뭄으로 잎이 쪼그라들고, 열매가 누렇게 변해 떨어진다. 이미 스프링클러를 가동하는 등 물을 공급했지만 시기를 놓쳤다. 이번 주말 태풍과 함께 비가 내린다면 2차 수확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을 정도여서 하늘만 믿고 있다"고 했다.

오랜 가뭄과 이상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고춧잎들이 뒤틀려 말라 들고, 적기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할 꽃망울들이 가뭄으로 바닥에 떨어져 2, 3차 고추 수확조차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경상북도가 최근 고추 재배지의 초기 바이러스병 발생을 조사한 결과 전체 면적의 1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영양의 올해 전체 고추재배 면적 1천821㏊ 가운데 노지 재배한 고추밭 7천500㏊에서 40% 정도가 바이러스병이 발생한 것으로 경북도는 집계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영양지역 전체 고추 수확량은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줄어들고 노지재배 고추생산농 경우,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실상 재난 상황이 온 것이다.

안홍 영양군농업기술센터 고추 지도담당은 "이 같은 바이러스병은 농약방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매개충인 진딧물류와 총채벌레류를 철저히 방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고추에 발생하는 주요 바이러스병은 6종으로 보고돼 있으나 그중에서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CMV)와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TMV)에 의한 감염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데 이들 바이러스는 진딧물류에 의해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고구마, 들깨, 콩 등 밭작물들도 가뭄에 타들어 가고 있다. 안동 와룡면 고구마 주산지에는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는 잎들이 누렇게 시들었다가 아침저녁으로 좋아졌다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충분한 영양 섭취를 못 해 수확량은 물론 상품의 질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고구마 생산농 권진원(64'안동시 와룡면) 씨는 "올해 밭작물은 가뭄으로 다 틀렸다. 조금 일찍 심었던 농가는 그나마 열매를 맺는데, 그마저도 열매가 10개 열릴 거라면 3개 열리는 상황이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마르고 고온일 때만 핀다는 고구마꽃이 곳곳에 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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