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소기업의 산업기술 유출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발생 중이다. 기술도 점차 치밀해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대응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업계는 현실을 반영한 법률 정비와 보안분야에 대해 조사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치밀해지는 수법
대구의 한 부품소재전문기업체 A사는 2011년말 기준 직원수 180여명, 매출액 440억원의 견실한 기업이다. 국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면서 동종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 분야만 매진하면서 얻어낸 기술과 각종 재료배합 등의 산업비밀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전 대표이사였던 B씨가 2011년 5월 사직한 뒤 매출이 급감했다. 회사는 B씨가 영업비밀 관리책임자들과 공모해 핵심생산기술정보를 동종업계에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방법은 치밀했다. B씨는 2011년 4월 회사 사주로부터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뒤 5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같은해 7월 경북지역에 동종업종의 C 회사가 세워졌다.
A사 관계자는 "사직서를 내기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 동안 각 기술자를 불러 회사 기밀을 외장하드디스크와 USB 등에 담아냈다"며 "심지어 핵심기술자들을 순차적으로 퇴사하도록 한 뒤 C사로 모두 이직했다"고 주장했다.
A 회사에 따르면 C 회사의 20여명 직원 가운데 생산현장에는 상당수가 A 회사에 근무했던 핵심기술자들로 밝혀졌다.
산업기술 유출의 근거로 A사는 단기간에 양산할 수 없는 특정분야 제품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우리가 만드는 부품은 2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가 달려들어도 몇 개월만에 양산할 수 없는 제품이다"며 "그런데 설립한 지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생산한다는 것은 기밀 유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C사는 설립한 뒤 4개월만에 동종업계 2위로 올라섰다. A회사 측은 "기술유출로 인해 230여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핵심기술자를 다 빼가 납기를 맞추는데에도 차질이 생겼다. 앞으로의 피해가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산업기술 유출은 대부분 '내부유출'에서 비롯된다. 국가정보원 산하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기술유출 주체는 전'현직 직원이 각각 60.8%, 19.6%를 차지하는 등 내부유출이 80%를 넘는다.
산업기밀보호센터 측은 "협력업체에 의한 유출도 꾸준히 증가해 9.6%를 차지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보안관리도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도, 입증도 어렵다
산업기밀이 유출됐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피해를 막기가 쉽지 않다. 혐의를 확인하고 판결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다. A 회사의 경우 2012년 2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고소했지만 압수수색영장청구가 기각되면서 2012년 9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났다. 이후 2012년 11월 부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에 진정을 낸 결과 2013년 4월 C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지난해 2월 부산지검에 기소의견 송치돼 현재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 다시 이송됐다. 첫 고소 이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압수수색을 했고 2년이 돼서 다시 대구로 사건이 이송됐다. 그동안 A 회사는 2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입증'이다. A사 임원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갖추거나 '입증'을 하기가 어렵다"며 "아직 산업기술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 시행 중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승소하더라도 피해회복이 어렵기 때문. 피해 당사자인 중소기업을 실제 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보안전문가는 "산업기술은 복잡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술유출을 확인하는데 적게는 1개월부터 1년까지 걸리기도 한다"며 "피해기업이 손해를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해 무혐의처분을 받는 경우도 많다. 손해액 추정 규정이 있지만 실제 입은 유무형의 피해를 모두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소기업 중 핵심기술을 도둑맞고도 평소 보안문제 소홀로 '영업비밀'을 인정받지 못해 영업비밀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비밀보호법(제2조2호)에 따르면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경제적 유용성)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비밀 관리성)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세 번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현행 영업비밀보호법에 명시된 '상당한 노력' 문구를 '합리적 노력'으로 변경하는 등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회사 기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안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런 자금도 없을뿐더러 인력도 구하기 어렵다"며 "또 이 같은 산업기술 유출이 발생하더라도 지역에 어디에 전문적으로 맡기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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