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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하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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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서 법관 자질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가 있다. 바로 선임병 폭행 사건이다. 일병이던 시절에 상병인 고참병을 폭행한 일이 있었다. 연대 정훈병으로 근무하던 나는 내무반을 정보과, 작전과와 같이 썼다. 낮에 일하는 행정반은 부서가 서로 달랐지만, 취침 등 기거하는 방인 내무반은 공유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엄연히 내무반 군기라는 게 있어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사단장 브리핑 준비로 며칠 밤샘 야근을 하던 작전과 권 일병이 도저히 피로를 못 견디고 내무반으로 내려왔다. 석식을 하고는 행정반에 올라가지도 않고 육법전서를 펴놓고 고시공부를 하던 박 상병이 다짜고짜 권 일병을 꿇어앉혀 놓고는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일을 다해 놓지 않고 내려왔다는 이유에서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마음이 여리기 짝이 없는 권 일병의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걸 본 내가 속된 말로 '돌아'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내무반에는 왕고참 외에 다른 선임병이 없었다. 건너편 침상에서 옆차기로 날았다. 쓰러진 박 상병을 마구 밟아놓고는 튀었다. 누구도 출입이 금지된 연대 암호실로 숨어들었다. 이틀 만에 내무반에 들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숙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침상 위로 올라가라!"는 박 상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상황은 무사히 끝났다. 사병끼리의 일을 보고할 리도 없었지만 만약 보고되었다면 사단 영창 15일 이상의 큰 죄목이었다.

내가 격분한 이유는 법대 다니다 입대한 박 상병의 이기적인 인간성 때문이었다. 바쁠 때는 말년 병장도 같이 야근을 하건만, 박 상병은 달랐다. 늘 후임 권 일병에게 야근을 시키고 고시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법관이 되었느냐?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안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도 갖추지 못한 자가 법을 다루는 법조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사실, 군대에서 후임이 선임을 폭행하는 하극상(下剋上)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의 기본 질서인 상명하복(上命下服)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대참모부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을까? 그것은 아마 입대 동기 권 일병과의 우정 때문이었지 싶다. 가장 친한 동기가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약해 빠진 친구 대신에 차라리 맷집 좋은 내가 곤욕을 치르고 말자는 젊은 날의 호기였다.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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