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평양시장, 강경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다. 지금도 섬유와 직물 분야에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이불의 70%는 서문시장을 거친다는 얘기도 있다. 설, 추석 같은 명절이면 서문시장은 명절선물과 제수를 사려는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서문시장에서 40년 가까이 속옷 도매점을 하는 청운사 배용근(64) 사장은 상인 중에 원로급에 속한다. 최근 가게에 속옷이 수북이 쌓였다. 전북의 한 공장에서 만든 속옷이 대형마트에 납품이 거부되면서 그에게로 넘어왔다고 했다.
이른바 '덤핑 물량'이다. 배 사장은 1978년부터 서문시장에서 속옷 도매업을 했다. 군 제대 후 취업을 했다가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된 후 오토바이로 전통시장을 다니면서 속옷을 팔다가 돈을 빌려 속옷 공장을 시작했고, 이어 서문시장에 터를 잡았다. 15년 전에 공장을 처분했고, 지금은 점포만 운영한다.
60대 초'중반이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일손을 놓는다고 했다. 그는 "손님들이 점점 젊어지는 탓에 60대를 넘겨 장사를 하면 트렌드를 쫓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도 곧 은퇴해야 합니다"며 껄껄 웃었다.
추석매출을 물었더니 그는 손사래부터 친다."옛날에 비하면 추석 대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추석 선물로 부모님, 형제'자매 속옷을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는 추석 대목이 한 달 전부터 시작됩니다. 소매상인들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렸으니까요. 또 안동, 영주, 포항 등 경북지역 상인들도 줄을 이었습니다. 아무리 물량이 많아도 보름이면 동이 났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생산되는 속옷 상표만 290가지나 됐다고 했다.'코끼리, 은하수, 회전의자, 아폴론…' 상표를 두고 공장주끼리 싸우기도 했다. 그는 "쌍방울도 대구에서 원단을 사가서 전주에서 만든 후 서문시장에서 되팔아 돈을 벌어 시쳇말로 속옷 재벌이 됐죠"라고 전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대구의 섬유 명성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문시장 섬유 도매점도 재편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어음으로 결제하고, 외상으로 물량을 주곤 했지만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면서 소규모 섬유공장들이 줄도산을 했고, 도매점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죠, 되돌아보면 격변의 계절이었습니다."
그는 37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다. "치질 수술을 하고도 그 다음 날 점포 문을 열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전통시장도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만큼 명절 대목은 없지만 그래도 전통시장에는 정이 있습니다. 정이 그리울 때 전통시장을 찾아주세요."
이창환 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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