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표현으로, 가혹한 정치는 사나운 맹수인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이다. 공자가 제나라로 가던 중 세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에게 사연을 물으니 시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공자가 이곳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여인은 "여기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말을 들은 공자가 '가정맹어호'라고 탄식했다.
갈수록 우리 정치에서 '진정성'(眞情性)이 사라지고 있다.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을 뜻하는 '진정성'은 일반인에게도 필요하겠지만, 국민의 안녕과 행복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바로 지금, 진실과 진정성이 실종된 정략적 거짓 정치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은 권력자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나라 안의 대립과 분열, 상호 증오는 더 극심해졌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진정성 없는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옴이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5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실종자 10명은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 김영오 씨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했고, 많은 국민이 동조 단식에 나선 상황이다. 추석 명절에도 유가족은 딱딱한 길바닥에서 사태 해결을 호소하고 촉구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돌보겠노라고 약속했다. 여당과 정부에서도 책임자 처벌과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숙연한 표정으로 다짐했던 굳은 약속은 어느새 빛이 바래고, 힘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나 몰라라 한다. 두 차례 선거에서 이긴 여당의 배신이자 모르쇠 작전이다.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주었으면 더 적극적으로 사태를 풀어야 함에도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다. 문제의 핵심은 모른 체하면서 민생 국회의 시급성과 중요성만을 되뇌고 있을 뿐이고, 언론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신조어로 부화뇌동하고 있다.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단독으로 정기국회를 운영하겠다는 엄포도 들린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조사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민생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국민이 배불리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부를 믿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생명권 확보는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 없이 소중하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가운데 300명이 넘는 귀하디 귀한 목숨이 바닷속에 잠기며 스러져 가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일어난 믿기 어려운 대참사의 근본 원인과 구조 실패 원인이 무엇인지 낱낱이 밝히고, 지위고하를 떠나 잘못이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돈과 여론몰이로 슬그머니 넘어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잘못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책임을 지지 않고 정권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진실 감추기에 급급해서는 거세게 터져 나오는 정의와 양심의 봇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짓의 눈덩이가 크게 불어나면 마침내 스스로 그것에 짓눌려 버리는 것이 세상 이치다.
이제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을 성실하게 증명할 때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보냈던 눈물이 선거용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최고 정치 책임자로서 순수하게 흘린 참된 마음의 약속이었음을 특별법에 대한 전향적 결단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 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유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며, 국민이 모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제일 시급한 민생이자 상생의 길이다. 진실을 향한 국민의 분노보다 더 두려운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정복/대구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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