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들어서다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담배를 피운다. 대뜸 호통을 쳐대면 피우던 담배를 숨기거나 도망간다. 이건 20세기의 모습. 골목길 들어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담배를 피운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만 되어도 남학생 평균이 키 169㎝, 몸무게 62㎏이라니 고등학생쯤 되면 머리에 피가 말랐는지 안 말랐는지 헷갈린다. 솔직히 겁도 난다. 이건 21세기의 모습.
청소년들의 사유 체계 또한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들 뿐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소비하는 모든 것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복종만을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항하지 못한다. 사회시스템은 저항의 기미만 보이면 사회적, 경제적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21세기 한국청소년은 다르다. 이들은 담론의 형성조차 주체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 수밖에. 마침 좋은 도구이자 공간이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었으니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일탈할 수 있는 골목길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유하고 교감한다. 학습과 세계관의 형성도 인터넷을 통해서다. 인터넷을 통해 유행이 확산되고 소비된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인터넷의 가상현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인 가상세계에서는 계급이 생긴다. 계급은 패딩 점퍼로도 구분되며 스마트폰 기종으로도 구분된다.
생소하고 당혹스러운 청소년들의 사유 체계에 대해 학자, 교육자,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한다. 냉정히 보면 청소년들의 행동이 기성세대의 권위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우려스러워한다. 특히 지금의 청소년들은 기성의 권위에 균열만을 가했던 이전의 청소년들과 달리 조롱이라는 오브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개의 오브제는 인터넷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완성되고 하나의 담론이 된다.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펼치는 담론의 생산과 소비가 기성세대의 그것과 닮아 간다는 점이다. 사유체계가 다르고 독해의 방식도 다르면 새로운 어떤 것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모양새가 점점 비슷해진다. 분명히 한국은 좌'우의 대립상황 속에 있고 과거의 습속을 되풀이하는 이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독해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그저 기성세대의 모습이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면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폭력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놀이거리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인터넷에 올라온 많은 폭력적 게시물 절반 이상은 10대들의 글이었다. 연령도 낮아져 14세 미만이 쓴 글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대상 인터넷 윤리교육은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열악한 예산으로 교육이 진행되는 경우는 전체 중, 고등학교의 10% 정도뿐이다. 이 또한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할 뿐이며 제도권 밖에 있는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전무한 상태다. 이 정도 되면 폭력의 대물림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교육 내용에도 있다. 청소년들의 사유체계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복종을 강요하는 또 다른 폭력의 모습이다. 청소년을 말하는 주체로서 인식하지 않는 교육은 그들에게 또 다른 조롱의 오브제를 줄 뿐이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동굴로 떠나는 모습을 마냥 지켜만 볼 텐가.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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