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독재라 하면 국가권력, 집권당에 의한 공공 부문에서의 독재를 지칭하였다. 이제는 국가의 구성원리가 다양화되고, 시민단체가 활성화되면서 민간 부문에서의 독재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넓게 보면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서 파워 누리꾼에 의한 의사결정 왜곡도 민간독재의 한 유형이다.
우리는 수많은 단체의 구성원으로 소속되어 살아간다. 학연으로서는 각종 동창회에다, 지연으로서는 향우회로 연결되어 있고, 의사, 변호사, 회계사, 건축사 등 전문직으로서는 전국 단위의 전문가협회가 존재한다. 노동조합도 직장별, 산업별 노조가 있고, 자영업자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가 있다. 그 외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간인 중심의 시민단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모두 회원들의 직'간접 선거에 의하여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를 선출하게 된다.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원은 선출되기 전에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다가도 일단 회장이 되면 마음이 바뀌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변호사들도 전체 회원이 약 1만8천 명이고 내년에는 2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국의 변호사들은 2013년 1월부터 직접선거에 의하여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선출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최근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전체 회원들 과반수의 의사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성명서 및 의견을 몇 차례 공적으로 표명하여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전직 회장단들은 현재의 변협회장이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성명서를 발표하였다고 항의방문을 추진하였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하면서 단식을 한 김영오 씨의 의사도 전체 유가족의 의사인지 의심이 든다. 김 씨는 단원고 유가족 대표로서 선출되었지만, 일반인 유가족 대표는 별도로 존재하며 입장이 김 씨와는 다르다. 회원들 가운데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분위기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설사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뭉개진다. 개인의 의사는 파묻히고 특정 몇몇 의사가 집단적 의사가 되어 버린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여서 어떤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념과 명분에 집착하는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고 결국 독재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국가권력에 의한 공적인 독재는 내부자 고발, 민간감시기구 등에 의해 어느 정도 제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는 언젠가는 구제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의 독재는 제어할 수 없고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이렇게 되다 보니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고, 국가권력을 위하여 일하다가 피해를 당하는 것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국가기관도 일단 사고가 나서 공무원이 피해를 보면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다. 세월호 사고 수습과정에서 해경의 구성원이 적극적인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를 위하여 공헌하거나 희생한 수많은 국가유공자나 유족들이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하지만 까다로운 심사절차 때문에 등록을 거부당하는 예가 많다. 이를 부당하다고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지만, 승소 확률은 20% 내외에 머문다. 그러니 특별입법에 의한 진실규명과 보상에 매달리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국가나 민간 부문에서 모두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정한 규정이 확립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한 수를 써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기회에 검찰이나 법원에서도 그동안 기소독점권, 보상 관련 재판에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나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독재는 나치의 파쇼독재, 개발도상국의 군부독재, 공산주의 일당독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인에 의하여 조직된 사회단체에서도 우리는 독재의 예를 보게 된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제하거나 무시하면 그게 결국 독재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비울 때 민간독재의 망령이 사라진다.
황현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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