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지에 허리 휘는 지자체 살림] <하> 경북도

청송 기초연금만 매달 12억…포항은 돈 없어 길 못 넓혀

만성적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벌든 못 벌든 항상 지출해야 될 '경직성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몸통은 작은데 머리만 커서 뒤뚱거리는 가분수 구조다. 이런 기업은 기업 평가를 받을 때마다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재가 의심스럽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갈수록 커져가는 복지비 부담 속에 경북도 내 시군들이 이런 꼴로 빠져들고 있다. 향후 존치 여부가 불투명할 만큼 비용이 수입을 훨씬 더 초과해 버리는 '만성 적자 재정'의 함정에 이미 발을 디뎌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 지방 재정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복지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인 만큼 복지 재원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세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 세정 구조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누더기로 변해가는 시'군'구 살림살이

경북도 내에서 가장 재정이 빈약한 곳으로 꼽히는 청송군. 청송군의 복지예산은 10년 전인 지난 2005년과 비교할 때 2배가 늘었다. 청송군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이다. 중앙정부가 도입한 이 제도로 지난 7월부터 연금 지급이 시작돼 지역주민 65세 이상 7천100여 명에게 매달 12억8천200여만원씩 돈이 나가고 있다.

종전 노인들에게 주던 기초노령연금은 7천100여 명에게 6억3천300여만원만 주면 됐는데 법정 지급액이 늘어나면서 책정해야 할 예산도 2배로 늘었다.

경북도 내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의성군. 의성군은 살람살이가 넉넉지 않은 곳으로 인정받아 복지비 지출에서 중앙정부 등의 지원 비율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때문에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비 비율도 16%대로 포항'구미 등 큰 지자체보다 낮았다.

하지만 의성군의 고민은 최근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복지비 비율이 13%였는데 올해는 16%로 순식간에 3%포인트나 높아졌다. 시골이라 노인인구가 급증하다 보니 기초연금 지급 등의 부담이 갑작스레 커져서 1, 2년 내에 총예산 대비 복지비 부담 비율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천시는 올해 복지 예산이 처음으로 1천억원을 돌파했다. 일반회계 기준으로 한 해 살림의 19.57%다. 내년이면 20%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영천의 복지비 부담은 매년 증가세가 눈에 띌 정도로 커져만 가고 있다. 2005년 321억원이었던 복지비는 올해 1천17억원으로 증가했다. 10년 만에 3배 이상 뛰어버린 것이다.

영천시 한 관계자는 "올해 기초연금이 새로 도입되면서 이 예산 배정이 지난해 198억원에서 313억원으로 뛰었다"며 "기초지자체에 100억원이란 돈은 엄청나게 큰 규모인데 중앙정부의 정책에 맞추다 보니 매년 이런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골목길 하나 넓히는 것조차 힘겨워

경북 최대 도시 포항. 이곳 남부경찰서~한국전력 구간 도로는 개통 소식이 언제 들릴지 알 수 없다. 2008년에 시작된 이 도로 개설 사업은 6년이 훌쩍 지났지만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전체 130억원의 비용이 들지만 92억원이 투입된 이후 돈이 떨어져 공사가 중단됐다.

KTX 포항신역사 부근에서 흥해읍 이인리를 잇는 도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11년 시작된 이 도로 개설 공사는 478억원이 필요하지만 3년 동안 74억원만 집행됐다. 400억원이 넘는 돈이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 도로 역시 언제 개설될지 물음표만 남아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은 인구가 많다 보니 경북도 내에서 가장 복지비 부담 비율이 높아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복지비를 쓰고 나면 사실상 자체 사업을 할 재원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동네 민원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니 지역의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향후 경주의 '핵심 먹거리'로 추진 중인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는 총 사업비 규모가 3천143억원으로 이 중 지방비가 1천182억원 배정돼 있다. 하지만 경주시는 1차 사업비 195억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비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200억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 경주시 관계자들은 앞이 캄캄하다고 털어놨다.

향후 도청 이전으로 그동안의 얼굴을 확 바꾸고 싶은 예천군은 도촌~백석 구간 및 대제~관현 구간 도로 확장 공사를 내년에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도촌~백석 구간은 내년, 대제~관현 구간은 2017년 준공 예정이지만 돈이 없어 내년 예산에 공사비를 반영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불과 10년 사이에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비 부담이 2배 늘었다. 지금은 17%인데 이제 곧 군 재정의 20%를 복지비가 차지할 것이고 더 늘어날 것이다. 가장 먼저 도로, 그다음은 지역 핵심 산업인 농업 부문에 대한 예산 배정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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