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풍류산하] 만파식적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여론에 밀려 해양경찰을 없앤다고 공언하고 선임병에게 맞아 죽은 사병 문제 때문에 참모총장이 옷을 벗어야 하는가. 평생을 군에 바친 육군 대장에게 책상을 주먹으로 쳐가며 아이 나무라듯 하는 여당 대표의 행동을 과연 옳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기를 먹고산다'는 군의 위상과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분단국으로 전쟁이 잠시 중단되어 있는 상태다. 이런 나라의 군대에 더 이상 전우애를 기대할 수 없다. 만약 전쟁이 터지면 백전백패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전투는 전우애로 똘똘 뭉쳤을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군은 고참병이 신참을 개돼지보다 못한 노예로 취급하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야만적 조직이다. 이 시점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평소 선임병들에게 두들겨 맞아 원한에 사무쳐 있는 사병들의 총구는 어디로 겨눌지 아무도 모른다.

비단 군대만 그런 게 아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느 미친놈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랴'란 글을 보자. "고급공무원, 국회의원, 판검사 충성 서약만 했지 사리사욕에 눈멀어 국민은 안중에 없는 한심한 나라. 국회의원들은 그만둬도 월 120만원씩 받아 처먹고 평양을 멋대로 들락거려도 처벌 못 하는 우리나라. 병역미필자가 장성에게 큰소리치고 학생이 선생을 폭행하는 나라. 대통령만 되면 부정축재하고 좌파 대통령은 동상 만드는 나라. 병역기피 국회의원과 지방장관이 판을 치고 장관은 20일만 해도 연금 타 먹는 우리나라. 나라 말아먹은 집단들이 큰소리치는 나라, 아! 대한민국."

이렇게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아래로 내려오면서 줄줄이 썩었으니 아랫것들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돈을 탐하는 속성은 어쩔 수 없는 비열한 짓이라고 치자. 지금 우리 앞에 처해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은 태극기와 애국가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여성 정치인이 태극기를 밟고 연설한 적이 있으며 좌파 집단은 행사 때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고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어느 미친놈이 조국과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요즘은 국경일이 되어도 문간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이 줄어들다 못해 귀해졌다. 이게 누구의 탓인가.

이런 와중에도 희망의 싹수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이 개봉 12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못내 반갑다. '명량'은 우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해전을 영상으로 찍은 것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은 것은 감독의 출중한 연출능력, 출연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카메라 감독의 예리한 감각 등이 좋은 작품을 만든 3대 요소로 작용한 덕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세월호 사건, 군대 폭력 등 최근 나라 돌아가는 꼴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국민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이순신 장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관객 수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영웅을 기다려 왔다.

역사를 보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던 장군과 죽어서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왕들의 치적이 후세에 길이 회자하고 있다. 백제의 계백 장군은 마지막 싸움터에 나서기 전 "신라군의 칼에 죽기보다는 내 손에 죽는 게 낫다"며 가족들의 목을 베고 황산벌 전투에 나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순신 장군 역시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며 뱃전에서 운명했다.

신라의 문무왕은 동해로 몰래 숨어들어와 수시로 괴롭혔던 왜군을 진압하기 위해 대본 앞바다의 대왕암에 묻혀 스스로 호국용이 되었다. 그의 아들인 신문왕은 선왕이 짓다가 만 감은사를 완공하고 금당 밑에 구멍을 파 아버지의 혼령이 쉽게 절에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용이 된 선왕은 아들이 나라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대나무 한 그루를 내주었다. 신문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명명하고 국보로 삼았다. 그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가뭄에 비가 오고 풍랑을 잠재웠다. 이번 주말쯤 감은사지를 거쳐 대왕암으로 내려가 볼 작정이다. 바다 속 바위 무덤에 잠들어 있는 문무대왕 혼령에게 부탁하여 대나무 피리 하나를 만들어 '필릴리 필릴리'하고 불고 다녀야겠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겠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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