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등짐처럼 무거워지는 과거 경험들로부터 고통받고 상처에 허덕인다. 특히 사회적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재해는 피해자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지만, 양심적이고 배려가 많은 시민은 타인의 상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집단 죄의식에 시달리는 대다수 시민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요구나 불평을 쉽게 받아주게 되고, 이런 회로가 반복되다 보면 상처받은 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사이에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준 사람을 끝없이 비난하고 죄책감을 안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들이 받은 상처만 깊고 커 보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부지불식중에 상처받은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매 순간 상처를 빌미로 상대방에게 던지는 원망을 통하여 권력을 가진 가해자로 변질하여 가는 것이다.
며칠 전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을 도출하였으나, 유가족들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의 아픔은 온 국민이 이해하지만, 진상 규명이라는 명분에 휩싸여 민주적 절차와 합리적 수용의 한계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세월호 사고에 대하여 함께 아파하고 분노했던 국민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자들과 무분별한 감상주의자들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잘못된 권력을 부여한 탓이리라.
상처받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처는 권력으로 변질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상처가 권력으로 가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받는 집단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다. 세월호 유가족은 여야의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화이지, 설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결론이 난 합의안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그들의 생각을 뜯어고쳐 자신들의 의도에 맞추려는 것일 뿐이다. 정책의 편의성을 위해 그들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상처를 준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연금법 개혁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감당하지 못할 재정 적자가 예상되므로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국민연금과 이를 보조하기 위한 노후연금이 노후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무원'군인'교직자 등 특수신분자의 연금보장을 지금의 국민연금 수준으로 하향화하는 것은 복지의 후퇴이므로, 복지재정 지출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금제도 개편의 정당성과 그 정도에 대하여는 납입자들의 충분한 공감 형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여금을 내는 당사자의 참여없이 여당과 정부의 일방적인 연금법 개편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미치는 공무원들에게는 가학적인 상처가 될 수 있는 행위이다. 상처받는 집단을 양산한다는 것의 위험성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의 상처는 또 다른 권력을 낳게 되고, 상처가 낳은 권력은 어딘가로 공격성을 표출할 것이며, 거기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난다. 피학과 가학의 순환 고리가 끊어질 수 없는 것이다. 순환적인 공격성이 만연한 사회는 불안정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지난 상처를 자꾸 떠올린다고 현실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얘기하였듯이 '찢어버릴 시간과 꿰맬 시간'이 있다. 무엇을 찢어버리고 무엇을 꿰맬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상처투성이인 과거와 함께하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가 특정집단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절차적인 민주화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원전 방폐장, 밀양 송전탑 건설 등과 같은 천부적인 인권인 생명'자유'재산권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절차참여보장으로 상처받는 집단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안일 것이다.
이석화/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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