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싶다고 말할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4살 김은빈(가명) 양은 7개월째 병원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다. 갑작스레 은빈이의 몸에 침투한 백혈병 때문이다. 병원에서조차 은빈이는 맘껏 움직이지 못한다. 독한 약 때문에 운동신경에 이상이 생기면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다. 한 발을 내디디려 하면 금방 앞으로 고꾸라지고 만다. 엄마는 은빈이가 다칠까 매일 아이를 업고 다닌다.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도 걱정이지만 이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보험이 되지 않아 약값만 수천만원이 드는 치료지만 아이만 괜찮아진다면…."
◆다리가 아파 병원 갔더니 백혈병
은빈이의 부모는 예쁘고 건강한 아이를 얻은 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여유 있는 살림은 아니라 은빈이 가족은 외가에서 지내고, 은빈이의 부모는 맞벌이를 해야 했지만 늦은 저녁 은빈이를 보는 것만으로 가족은 행복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은빈이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는 열이 나고 아파하는 은빈이가 그저 가벼운 감기를 앓는다고 생각했다. 감기약을 달고 살았지만, 괜찮아지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언젠가부터는 아이가 팔과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거렸지만, 그저 성장통일 거라 넘겨짚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죠. 팔'다리가 아프다는 것도 외상이 없으니 오히려 꾀병 부리면 안 된다고 혼내기까지 했는데…."
몇 달 동안 떨어지지 않는 감기와 아픈 다리 때문에 계속해서 병원에 다니던 은빈이는 올 초에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엄마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은빈이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내 무관심이 아이를 아프게 한 건 아닌가,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 좀 더 일찍 병원에 왔어야 하는 건 아닌가. 너무 미안했어요."
◆은빈이 가족에게 불어닥친 불행
은빈이 가족에게 불행은 한꺼번에 닥쳐왔다.
지난해 할아버지가 요도암 진단을 받았다. 보험도 없이 암 진단을 받은 할아버지를 위해 은빈이 엄마, 아빠는 그간 알뜰히 살며 모아뒀던 돈을 거의 다 쓰다시피 했다. 얼마 후에는 영업직으로 일하는 은빈이 아빠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했다.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은빈이가 백혈병을 앓게 되면서 엄마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아빠는 수술은커녕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다시 일터로 나갔다.
"많은 돈을 번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하면서 한푼 두푼 모았는데 시아버지 치료비를 보태느라 상당히 많이 써버렸죠. 거기에 은빈이가 병원 신세를 지면서 남편은 일찍 마쳐도 오후 10시, 11시까지 일할 정도로 몸을 혹사하고 있어요."
외가와의 인연도 이맘때쯤 끊어졌다. 평소 음주가 잦던 은빈이의 외할아버지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손녀 앞에서도 폭언을 하고 흡연을 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은빈이 가족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른 엄마들은 기댈 친정이라도 있는데 전 친정과는 연을 완전히 끊었어요. 제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고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죠."
◆병원비 걱정보다 은빈이가 못 걸을까 걱정
누구보다 활달하고 밝은 은빈이. 몇 달간의 병원 생활과 견디기 힘든 치료 과정도 은빈이를 망가뜨리진 못했다. 매일 한 움큼의 약을 먹고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도 다 빠져버렸지만 은빈이는 다시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믿고 있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은빈이는 당연히 자신이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아이 덕분에 빨리 병이 낫고 원래처럼 뛰어놀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요."
하지만 은빈이가 잠이 들면 엄마의 눈에는 또 눈물이 고인다. 다른 백혈병 환아들보다 희귀한 약을 써야 하는 은빈이의 체질 때문에 날마다 빚이 늘어가고 있어서다. 게다가 치료를 받으면서도 잘 걸어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은빈이는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운동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한 발짝 내딛기도 어렵다. 마음만 앞서 걸으려다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엄마는 은빈이가 깨어 있을 땐 항상 웃고 있지만, 아이가 잠들면 걱정에 눈물을 흘린다.
"은빈이에게 맞는 약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대에 80만원이 훌쩍 넘는 주사를 맞아야 해요. 약값만 3천만원이 넘는데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1인실을 써야 하는 날들도 많아요. 병원비는 계속 불어나는데 아픈 허리 때문에 살이 25㎏이나 빠진 남편이 혼자 일하는 걸 보면 정말 걱정이죠. 하지만 돈보다 더 걱정인 건 은빈이 상태예요. 병원에서도 치료 중에 걷지 못하거나 운동신경이 마비되는 케이스는 처음이라는데 혹시 이대로 걷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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