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자출 고수 열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지 17년 정도가 되고 보니 그동안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꽤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늘 그분들의 존재를 느끼며 다니다 보면 친근한 느낌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몇 분들을 나름대로 자출(자전거 출퇴근)의 고수라 이름 붙여 보았다.

먼저 생각나는 분은 '롱다리 고수'이다. 뒤에 널찍한 짐받이가 달린 생활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분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헐렁한 점퍼 하나가 그분의 거의 변하지 않는 패션이다. 그분이 그 롱다리로 페달을 쑥쑥 밟는데 자전거가 어찌나 가벼운지 그분을 쫓아가려고 숨을 헐떡이곤 했다.

요즘은 자전거마다 21단이다, 28단이다 하며 기어가 달려 있어 수시로 변속을 해주면 쉽다지만 그분의 자전거는 그런 것조차 없다. 늘 꼿꼿한 자세로 쓱쓱 쓱쓱 지나쳐 가는 그분의 모습은 진정한 고수의 '포스'였다.

최근에 만나는 고수도 있다. 이분의 별명은 '슬리퍼 고수' 되시겠다. 거의 매일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그리고 발에는 투박한 슬리퍼를 신고 있다. 직장에 가서 갈아입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거의 복장이 비슷비슷하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단단한 체구라 그분을 생각하면 마치 직육면체의 단단한 각재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대로변에서 만나면 한 5분여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데 그 탄탄한 다리에서 파워가 느껴지는 페달링이 일품이다.

여성 고수도 한 사람이 떠오른다. 퇴근길에 만나게 되는 분인데 지금은 잘 뵐 수가 없다. 50, 60대는 되어 보이는데 항상 챙이 넓은 피크닉 모자를 쓰고 다니신다. 옷은 품이 넉넉한 원피스형 치마를 주로 입으시는데, 그분의 우아함에 나는 그를 '그레이스 고수'라 부른다.

분홍빛 여성용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데 자전거 앞 둥근 망에는 큼지막한 숄더백이 들어 있다. 그리 힘들이지도 않고 경쾌하고 우아하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역시!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고수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의 연령이 고수라 하기에는 많이 낮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자전거 사랑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고수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올 초 이른 봄이었던 모양이다.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등교하는 모습이었다. 차림새를 보고 초등학생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교복 상의에 회색 치마를 입고 있지 않은가. 아직 앳되고 예쁘장한 그 소녀의 페달링은 경쾌하다고 할 수 있다. 작은 체구였지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자전거가 매우 가볍게 느껴진다.

어느새 한더위도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게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이다.

주말 레저용뿐만 아니라 출퇴근 시간에도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서 더 많은 고수들이 출현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도 점점 더 좋아지지 않겠는가.

홍헌득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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